북한산은 수많은 사람들이 주말마다 오르는 인기 등산 코스입니다. 맑은 공기, 탁 트인 풍경, 그리고 도심과 가까운 접근성까지 갖춘 그야말로 ‘서울의 쉼터’죠. 그런데, 여러분이 자주 오르내리는 그 산 한가운데 거대한 성이 있다는 건 알고 계셨나요? 바로 ‘북한산성’입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성이 무려 30년간 말만 무성하다가 단 6개월 만에 뚝딱 지어졌다는 것. 어딘가 수상하지 않나요? 그 이면에는 숙종과 대신들 사이에서 벌어진 아주 흥미로운 권력의 줄다리기가 숨어 있습니다.
1,성 하나 짓자는데 30년을 망설였다고?
때는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청나라에 무릎을 꿇은 뒤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왕이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숙종은 결심합니다. ‘성을 쌓자.’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대신들이 전혀 협조하지 않았거든요.
"전하,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청나라가 오해할 수 있습니다."
"국고가 부족합니다."
그럴듯한 이유들이 쏟아졌지만, 속내는 간단했습니다.
“왕이 성을 쌓기 시작하면, 왕권이 커질 것이다. 그건 곧 대신들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2. 대신들: 머뭇거리는 이유는 ‘정치적 계산’
숙종이 북한산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670년대. 하지만 실축은 1711년. 무려 30년이나 말만 무성했던 이유는 딱 하나, 정치 때문입니다.
당시 조정은 노론과 소론이 치열하게 맞서며 환국정치를 반복하던 혼란기. 숙종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도, 조금씩 자신의 힘을 넓혀갔습니다. 왕은 말하고, 대신들은 눈치 보고, 백성들은 지켜보는 묘한 분위기.
숙종은 대답 대신 준비를 시작합니다. 직접 답사를 다니고, 지형을 살피고, 기록을 모읍니다. 수십 년간 그는 말은 아꼈지만, 준비는 계속했습니다.
3.그런데 6개월 만에 지어졌다고?
놀랍게도, 1711년 4월 착공한 북한산성은 같은 해 10월에 완공됩니다. 단 6개월.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서울 외곽 산에 성을 쌓는 일은 아무리 요새를 이용하더라도 수년은 걸릴 작업입니다. 그런데 6개월?
사실 이건 미리 다 준비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숙종은 대신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물밑에서 치밀하게 계획해왔고, 그가 정치적으로 가장 유리해진 시점에 단숨에 실행한 것이죠.
"이제는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
그는 그렇게 말없이 성을 올렸고, 대신들은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4.이 성, 그냥 돌덩이가 아니었습니다
북한산성은 단순한 방어용 성곽이 아닙니다. 여섯 개의 성문, 여덟 개의 암문, 두 개의 수문, 그리고 무엇보다 왕이 직접 피신할 수 있는 행궁까지 포함된 구조.
즉, 이건 "왕의 마지막 보루", 동시에 "정치적 상징물"이었습니다.
왕이 성을 짓고 들어가면, 그 순간부터는 대신들의 말보다 왕의 말이 법이 되는 공간. 숙종은 그런 공간을 원했고, 실제로 만들어냈습니다.
5.숙종의 ‘정치 연극’은 성공했는가?
북한산성 완공 당시, 숙종은 말년으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마지막 정치 승부수를 이 성을 통해 보여줍니다. 조정의 파벌 싸움을 넘어서는 국책사업을 밀어붙이고, 절대왕권의 존재감을 확인시킨 상징물.
이때쯤 숙종은 “폐비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이에서 궁중을 뒤흔든 정치 드라마도 벌이고 있었죠. 왕이 때로는 감정을 숨기고, 때로는 결단을 내리는 방식으로 정국을 흔들던 시기. 북한산성은 그 모든 ‘숙종 드라마’의 배경이자 무대였습니다.
6. 당신이 오르는 그 성 위에 남은 흔적들
다음에 북한산을 오르게 되면,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세요.
이 돌담 위를 누가 걸었을까? 이 성문 앞에서 어떤 결단이 있었을까?
그리고, 왜 이렇게 급하게 지어졌을까?
북한산성은 돌이 아니라 정치로 지어진 성입니다.
왕의 야망, 대신들의 계산, 시대의 불안, 민심의 피로.
모든 것이 얽혀 만들어진 거대한 정치의 흔적이죠.
북한산성은 그저 옛날에 지어진 방어시설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30년간 왕이 준비하고, 대신들이 망설이다, 결국 숙종 혼자 밀어붙인 조선 정치사의 농축된 한 장면이 들어 있습니다.
눈앞의 풍경은 고요하지만, 그 아래에는 수많은 침묵과 견제, 그리고 결단이 녹아 있습니다.
그 성을 한 바퀴 돌아보며, 조선이라는 나라의 권력 지형도를 떠올려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