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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일제시대59

우리나라 최초 유형, 무형 유네스코에 등재 된 조선의 뿌리 죵 종묘는 1995년 석굴암.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같이 우리나라 최초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으로 왕의 조상을 모시는 곳입니다또한 해마다 제를 올리는 종묘 제례악은 2001년에 무형문화재로 등재될 만큼 역사의 뿌리가 깊은 곳으로 오늘 종묘에 대해 알아볼려고 합니다. 1. 조선의 설계도, 그 첫 번째 획: 정도전과 종묘역사에 조금만 관심있으신 분들은 알겠지만 한양을 설계한 사람은 정도전 입니다. 그는 경복궁과 종묘 사직을 중심으로 해서 한양에 4대문을 설계했는데. 그중 가장 먼저 세운 것이 종묘였습니다. 정도전은 유교적 원칙인 "좌묘우사"를 염두해 둔거입니다 .좌묘(左廟): 임금이 앉은 자리(경복궁)를 기준으로 왼쪽(동쪽)에 조상을 모시는 종묘를 둔다.우사(右社): 오른쪽(서쪽)에는 땅과 .. 2026. 4. 14.
조선 건국에 설계자, 혁명가 정도전 정도전 그는 이성계와 같이 혁명으로 새로운 조선을 만든 인물입니다. 또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기본 설계를 한 사람이지만 결국 그의 끝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게 죽음을 당하고 맙니다. 조선은 정도전이 구상한 나라로 만들어 졌지만 만 오래동안 그는 조선의 영웅이 아니 죄인으로 남아있어야 했습니다기본 프로필이름: 정도전 (鄭道傳)호: 삼봉(三峰)출생: 1342년, 고려 경상도 봉화사망: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주요 활동: 조선 건국 설계, 정치 제도 정비, 한양 천도 주도대표 저서: 『조선경국전』, 『불씨잡변』목차개천에서 용 난 집안, 그리고 어린 시절유배지에서 깨달은 ‘백성’이라는 존재이성계와의 만남, 혁명의 시작조선이라는 나라를 설계하이방원과의 충돌, 그리고 비극패배한 혁명가, 그러나 남겨진 시스.. 2026. 4. 9.
어린 왕 단종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수양대군에게 왕좌를 빼앗겨 죽음까지 당했을까? 우리는 흔히 단종의 비극을 ‘어린 나이’ 때문에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좌를 뺏아기고 죽음까지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선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조선역사사 성종은 13살, 명종은 12살, 숙종은 14살에 왕이 되었지만누구도 왕위를 빼앗기지도 않았고 죽음도 당하지 않았습니다.그렇다면 왜 단종만 죽음을 당했는지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이글은 이유를 찾아보고자 합니다목차나이가 문제가 아니었다단종에게 없었던 ‘왕실 보호 시스템’황표정사, 그리고 권력의 왜곡If 시나리오: 소헌왕후가 있었다면결론: 시스템이 무너지면 리더는 무너진다1. 나이가 문제가 아니었다조선은 왕을 중심에 두고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나라였습니다. 어린 왕이 즉위를 해도 왕이 성장할 때까지 잘 나라가 운영할 수있는 시스템이 있었습.. 2026. 4. 2.
‘조선 금융계의 황제’였는가, ‘식민 권력의 브로커’였는가― 한상룡의 실체 신문은 그를 “조선 금융계의 황제”라 불렀지만, 학계의 평가는 훨씬 차갑습니다.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본 패전 직전까지 식민지 조선의 금융과 권력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인물, 한상룡 한상룡은 다 쓰러져가는 조국인 조선을 버리고 일본바라기를 한 인물의 행보를 따라 가보려고 합니다. 1. 출발선에 이미 놓여 있던 것들한상룡은 1880년 10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청주였습니다. 그는 관립 영어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1899년 일본의 사립 세이조학교에 편입했으나 1900년 중퇴합니다. 이 짧은 학업 경력은 훗날 그의 이력을 설명할 때 늘 간단히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그가 평생 활용한 가장 중요한 자산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일본어와 영어, 그리고 근대 관료제와 금융 용어에 대한 이해는 이후 그.. 2026. 1. 22.
한성은행, 한국 최초의 주식회사가 겪어야 했던 식민지의 길 안녕하세요.역사를 가르치고, 오래된 기록을 들춰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역사 교사입니다.오늘은 교과서 한 줄로는 절대 담아낼 수 없는 은행 하나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한국 최초의 주식회사’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와, 동시에 ‘식민지 금융의 하수인’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을 함께 짊어진 은행, 바로 한성은행(漢城銀行)입니다.이 은행의 130년 역사는 단순한 금융사가 아니라,이 땅의 근대화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타협을 했으며,결국 어디에서 무너졌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압축 파일과도 같습니다. 1.개화의 문턱에서 태어난 은행1897년의 종로 서린동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습니다.전차도 없고, 은행 간판도 낯설던 시절, 조선은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으로 근대 국가를 자처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 2026. 1. 22.
[일제시대의 핫플] 한국인이 직접 경영한 종로의 화신백화점, 조선 자본의 빛과 그림자 일제 강점기, 일본 자본이 서울의 상권을 장악하던 시절— 그 속에서 ‘한국인이 직접 세우고 운영한 백화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종로 네거리의 상징이자, 근대 소비문화의 출발점이 된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입니다.1930년대 조선 사회에서 백화점은 단순한 상점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문명과 근대, 신여성과 도시인의 상징이자, ‘조선도 할 수 있다’는 자존심이 담긴 공간이었습니다. 화신백화점은 그 한복판에서 조선인의 자본과 근대적 욕망이 교차하던 무대였습니다.1.“화신”이라는 이름의 시작‘화신’이라는 이름은 원래 한 상인의 가게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890년대 말, 신태화라는 상인이 귀금속 상점 ‘신생상회’를 열었고, 1918년에 자신의 이름 ‘화(華)’와 신생상회의 ‘신(信)’을 따서 ‘화신상회’로 이.. 2025. 10. 24.
[조선의 인플레이션] 경복궁 복원이 불러온 경제의 붕괴 조선 말기, 당시 실세 였던 흥선대원군은 왕권을 되살리기 위해 시작된 경복궁 복원을 추진 하였으나 결국 조선 경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흥선대원군이 발행한 당백전(當百錢)이라는 화폐가 있었고, 이 화폐는 조선의 경제 질서를 뒤흔든 주범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시기의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1. 흥선대원군과 경복궁 복원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열두 살의 고종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때 왕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섭정을 맡으며 실질적인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 시기의 조선은 세도정치로 국정이 문란했고, 안동 김씨 등 외척 세력이 오랫동안 정권을 쥐고 있었습니다.흥선대원군은 왕권의 약화를 조선 혼란의 근본 .. 2025. 10. 23.
친일파 1호 김인승 — 불평등 강화도 조약을 앞장 선 조선인 오늘은 ‘친일파’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 가장 먼저 조국을 배신한 인물 — ‘친일파 1호’ 김인승(金麟昇)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이완용보다 수십 년 앞서, 조선이 식민지가 되기도 전에 일본의 손을 들어준 사람.그의 이름은 김인승이었습니다. 1. 조국이 버린 인재함경북도 경흥 출신의 김인승은 16세에 관직에 오를 정도로 총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조선은 이미 부패로 썩어 있었습니다. 세도정치와 뇌물, 줄 세우기… 능력보다 돈과 혈연이 중요했던 시대.이 젊은 관리는 결국 상사와의 불화 끝에 조국을 떠나 러시아로 망명합니다.그의 첫 번째 배신은 일본이 아닌 조국을 향한 것이었습니다.그의 마음속에는 ‘이 썩은 나라에 내 재능은 낭비된다’는 분노가 자리했죠.이후 그는 러시아의 니콜리스크에.. 2025. 10. 18.
흥선대원군과 서원 철폐: 기득권을 무너뜨린 칼날 조선 후기는 무너져가는 시대였습니다. 500년 왕조의 기틀은 흔들렸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으며, 임금은 권위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결심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흥선대원군입니다. 고종의 아버지이자 섭정자였던 그는, 전통과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강력한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 개혁의 상징적 출발점이 바로 ‘서원 철폐’였습니다.하지만 서원은 단순한 사설 교육기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득권의 본산이었고, 조선 사회를 병들게 한 ‘지방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를 중심으로, 왜 그런 결단이 필요했으며,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1.세도 정치의 폐해, 그리고 무너져 가는 조선흥선대원군이 등장하기 전 수십 년간 조선은.. 2025.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