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전두환 정권 하의 대한민국. 정부는 충격적인 발표를 내놓는다. 북한이 금강산에 대형 댐을 건설하고 있으며, 이것이 완공되면 남한, 특히 수도 서울이 물에 잠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TV에는 “63빌딩까지 침수된다”는 시뮬레이션 영상이 등장했고, 신문은 “수공(水攻)의 공포”를 연일 보도했다.
국민은 불안에 떨었고, 정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평화의 댐 건설 국민성금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대대적인 모금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명분은 단순했다. “우리 손으로 평화를 지키자.”
하지만 지금 와서 이 사건을 돌아보면, 그것은 단순한 안보 대응이 아니라 공포를 팔아 돈을 모은 정치적 기획이었음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게 걷은 700억 원,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1. 북한 수공의 실체 없는 위협
전두환 정부는 ‘북한의 물폭탄’을 강조하며 국민을 설득했다. 당시 북한이 건설 중이던 금강산댐은 실제 존재했지만, 그 위치나 저수 용량 등에서 서울까지 수공을 가할 수준이 아니라는 반론이 빠르게 제기됐다.
- 금강산댐은 분수령 인근에 있어 물을 남쪽으로 흘리기 어렵고,
- 폭파하더라도 그 물이 한강 수계까지 도달해 큰 피해를 주기는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 미국 위성사진 분석 결과도 ‘수공 위협’은 과장됐다는 평가를 내놨다.
정부는 이같은 과학적 근거를 무시하거나 은폐하고, 일방적으로 공포를 주입했다. 안보 논리를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한 셈이다.
2. 강요된 애국심, 사실상의 반강제 모금
‘국민성금’이라 이름 붙였지만, 실상은 사실상의 강제 모금이었다.
전국 초중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돈을 내지 않으면 눈총을 받았고, 기업들은 공문을 받고 거액을 ‘기부’해야 했다. 군인과 공무원은 월급에서 자동으로 일정 금액이 공제되었으며, 종교단체와 사회단체 역시 외면하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 참여했다.
이렇게 모인 돈이 당시 기준 약 700억 원. 이를 2025년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약 3조 원에 달하는 가치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성금의 사용처는 지금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3. 평화의 댐 건설 비용은 얼마였나?
‘평화의 댐’은 결국 1987년 착공되어 1990년 1차 준공되었고, 이후 2002~2005년에 2차 확장공사가 이뤄졌다.
- 1차 건설비: 약 1,500억 원 (당시 기준) → 2025년 환산 약 6,000억 원
- 2차 공사비: 약 1,200억 원 (당시 기준) → 2025년 환산 약 2,000억 원
- 총 건설비: 약 2,700억 원 → 2025년 환산 약 8,000억 원 이상
국민이 낸 성금 700억 원은 전체 건설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어디에 얼마가 쓰였는지, 어떤 공정에 얼마가 반영됐는지를 구체적으로 공개한 바 없다.
4. 사라진 돈, 사라진 책임
정부는 줄곧 “전액 댐 건설에 쓰였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이 자금이
- 국방부로 흘러갔는지,
- 내무부 예산으로 섞였는지,
- 혹은 다른 비자금으로 전환됐는지조차 알 수 없다.
전두환의 비자금 수사 당시에도 기업으로부터 받은 불법 정치자금 수천억 원이 드러났고, 일부에서는 “평화의 댐 기부 명목으로 기업에서 돈을 걷은 뒤, 이를 정치 자금화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수사당국은 이 부분을 끝내 추적하지 못했다.
결국 국민이 낸 성금의 상당 부분은 공적 기록 없이 정권의 내부로 흘러 들어간 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그 누구도 사용 내역을 밝히지 않았다.
5. 지금도 존재하는 평화의 댐, 그러나 평화는 없었다
강원도 화천군에 여전히 남아 있는 평화의 댐은, 더 이상 단순한 치수 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공포 정치, 언론 통제, 그리고 국민을 ‘동원 대상’으로 본 독재정권의 상징이다.
댐은 물을 가두지만, 진실은 가둘 수 없다.
전두환은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수천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았지만, 생전까지도 “돈이 없다”고 주장하며 단 한 푼도 제대로 돌려주지 않았다.
마무리하며: 기억할 것은 ‘물’이 아니라 ‘기만’이다
평화의 댐은 안보 논리로 포장됐지만, 그 본질은 정권의 연장과 권력 유지를 위한 정치적 도구였다. 국민은 속았고, 돈은 사라졌으며, 진실은 지금까지도 묻혀 있다.
이제라도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 그 돈은 어디로 갔는가?
- 국민을 속인 권력은 어떻게 심판받았는가?
-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평화’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반드시 그 이면의 불의와 기만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진짜 평화는 거짓 위에 세워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