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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한성순보 탄생에서 폐간까지

by 5914 2026.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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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은 1883년에 창간된 한성순보라고 합니다. 사실 전 독립신문이 최초 신문으로 알고 있었는데 독립신문은 한글로 만든 최초 신문이라고 하네요~

여하튼 이글에서는 저의 한성순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한성순보(漢城旬報)는 누가 만들었을까?

한성순보의 창간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람은 박영효였습니다. 그는 1882년 일본을 방문해 신문이 새로운 지식과 소식을 널리 알리는데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조선으로 돌아와 당시 왕이었던 고종에게 적극적을 신문을 창간해야 이유를 알렸습니다. 그리고 고종의 승인을 받아 1883년, 근대적 인쇄 및 출판 기관인 "박문국"이 설치되었습니다. 박문국은 일본에서 수입한 근대식 납활자와 인쇄 기계를 들여왔고, 일본의 지식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제자인 이노우네 카쿠고로 등을 고문으로 초빙하여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그리하여요 마침내  1883년 10월 31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가 창간되었습니다.

 

 

2. 열흘마다 어떤 소식을 전했을까요?

"순보"의 은 열흘을 뜻하는 것으로 한성순보는 열흘에 한 번씩 발행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신문보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인 작은 책자에 가까웠습니다.

주요 내용은 정부의 발표와 관리의 인사이동 , 법령 공포 등 건조한 행정 정보가 실렸습니다 아무래도 나라에 발행하는 신문이므로 국가 입장의 내용들이 주로 담겨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문의 창간에 목적은 "계몽"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일어나는  전쟁, 국제 정세, 과학기술등 외국 신문을 번역하여 싣기도 했습니다.   이 신문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알리고 또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다만 이 신문은 모두 한문으로 썼기 때문에  독자들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소수의 지식인들만이 교류가 가능할 뿐  한문을 모른 일반 백성들은 읽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3. 갑신정변으로 멈춘 신문, 한성주보로 다시 나온다.

한성순보는 1884년 12월 갑신정변 이후 발행이 중단됐습니다. 정변이 실패한 뒤 반문국 건물과 활자. 인쇄 시설이 불타 신문을 만들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신문의 필요성을 인정한 김윤식  재발행을 추진했고, 고종 또한 이를 수락했습니다.  인쇄시설을 다시 마련한 끝에 1886년 1월 25일 한성주보가 창간되었습니다. 한성순보의 역할을 이어받되, 일주일에  한 번 발행하는 주간신문을 바뀌었습니다. 또  1886년 2월 22일 자에는 최초의 근대적 상업 광고로 알려진 독일계 무역회사 세창양행의 광고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한성주보는 역시 정부 소식과 국내외 사건을 다루었으며 새로운 문물과 논설 해설 등을 실었습니다. 또한 한문만 고집하지 않고 한글과 한자를 섞은 기사. 순한글 기사도 실어 독자들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또 신문은 상품과 거래 정보를 알리는 역할까지 맡기 시작했습니다.

 

4. 한성주보는 왜 폐간됐을까?

한성주보는 1888년 7월까지 약 2년 6개월 동안 발행됐습니다. 그러나 재정 부족으로 박문국이 폐지되면서 신문도 함께 문을 닫았습니다,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던 신문이어서 발행기관이 없어지자 결국 재정난으로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두 신문의 짧은 역사는 당시 조선에서 새로운 제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한성순보. 주보가 자립성이 없듯이 그때 그 당시 조선은 자립성을 잃어가는 시기였습니다.

 

 

 

5. 오늘날 한성순보를 기억하는 이유

한성순보의 역사적 의미는 국내외 소식과 새로운 지식을 정기적으로 정하는 근대 신문의 출발점이라는데 있습니다. 정부 소식을 알리는 범위를 넘어, 독자들이 외국의 정치와 기술, 국제 관계까지 접하도록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믈론 정부가 발행했고, 학문을 사용했으므로  독자들의 한계는 있었으나  그래도 당시 지식인들이 근대화에  시작하는 출발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당시 고종을 비록 해 관료들이 아주 잘한 정책들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이 고종의 주체로 신문을 발행했다는 것은 저로서는 좀 의해입니다.  

그 후 독립신문. 매일신문. 제국신문등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신문들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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