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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책이 아니다, 목판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방식과 보존 이야기

by 5914 2025.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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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선은 500년 동안 이어진 왕조”라고 흔히 말합니다. 하지만 조선을 그저 오래된 나라라고만 보기엔, 하나의 결정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조선은 그 500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나라’였다는 것, 바로 그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이 왜 세계적으로도 전례 없는 기록유산인지, 어떻게 그 많은 전란과 식민지 시기를 견디고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접할 수 있는지를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500년 동안 매일을 기록한 나라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이성계부터 철종까지, 25명의 왕과 약 472년간의 국정 운영을 기록한 국가 공식 일기입니다.
총 1,893권, 8천만 자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며, 단 한 줄의 누락 없이 이어졌습니다.

놀라운 건 그 기록의 방식입니다.
사관이라 불리는 전담 기록자가 매일 임금 옆에 앉아 왕의 발언, 회의 내용, 인사, 정책, 날씨, 심지어 눈의 양까지 기록했습니다.
사관은 왕조차 견제할 수 없었고, 왕도 살아 있는 동안엔 그 기록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 원칙이 500년을 지켜진 겁니다.

조선은 그렇게, 정치를 기록했고 권력을 견제했고 역사를 남겼습니다.
실록은 그래서 단순한 왕조 연대기가 아니라 ‘국가의 정신’ 그 자체였던 겁니다.

 

2. 실록은 책이 아니라 ‘목판’으로 새겼습니다

많은 분들이 실록을 종이책으로 생각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실록은 책이 아니라, ‘나무판’ 위에 한 자 한 자를 새긴 목판(木板)입니다.

실록은 왕이 사망한 뒤 편찬되었고, 그 원고를 가지고 수천 장의 나무판에 글씨를 새긴 후, 책처럼 인쇄했던 겁니다.
이 목판이 바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실물 원본입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게 많은 나무판을 어떻게 보관했을까?”

 

3.임진왜란, 실록이 사라질 뻔한 날들

조선은 실록을 잃지 않기 위해 4개의 사고(史庫), 즉 보관소를 전국에 나눠 설치했습니다.
정족산사고(강화도), 태백산사고(영월), 오대산사고(평창), 적상산사고(무주)
이렇게 4곳에 실록 목판을 분산해 보관했죠.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며 한양과 궁궐이 불타고, 실록이 보관된 사고들도 위협받게 됩니다.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백성들과 관리들이 목숨을 걸고 실록을 지켜냈다는 사실입니다.

4. 실록을 등에 지고 산을 넘은 백성들

정확히 말하면, 4곳의 사고 중 3곳의 실록은 모두 불타거나 약탈당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곳, 전라도 전주사고본만은 지켜졌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전주 지역 유생들과 백성들이 힘을 합쳐 실록을 숨기고, 지고, 옮겼기 때문입니다.
실록이 담긴 궤짝은 수십 킬로그램이 넘는 무게였고,
그것을 지고 산속 깊은 절과 바위 틈에 은닉하고,
왜군의 추격을 피해 강원도, 충청도로 옮겨 다니며 실록을 보호했습니다.

그들은 실록의 ‘가치’를 완벽히 알았을까요?
지금처럼 세계기록유산이라는 개념도, 국가유산이라는 인식도 없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은 이것이 단순한 책이 아니라 ‘나라의 근본’이라는 걸 느꼈고,
그래서 목숨 걸고 지킨 것
입니다.

이 전주사고본이 이후 다시 실록 편찬의 모본이 되었고,
나중에 복각되어 오늘날 실록의 계보를 이어주게 됩니다.

 

5.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또 다른 위기

조선왕조실록은 일제강점기에도 위협을 받았습니다.
일본은 실록을 연구 목적으로 반출하려 했고,
1922년엔 일부를 도쿄 제국대학으로 반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간토대지진으로 일본 도서관이 전소되며 실록 반출본은 모두 소실됩니다.

역설적으로 이 사건은
조선 안에 남은 실록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실록의 인쇄본과 마이크로필름 사본을 긴급히 부산·대구 등으로 분산 피난시켰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학자들은 전쟁 중에도 실록을 지키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단 한 권도 손실되지 않은 채 실록은 무사히 보존됩니다.

출처: 국가유산 이미지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6.지금, 실록은 어떻게 보관되고 있을까요?

실록의 원본인 목판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강화 정족산사고 등에서 분산 보관되고 있습니다.
모두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직접 관람은 어렵지만 일부 복제 목판이 박물관이나 전시장에서 공개되고 있습니다.

복제는 가능하지만,
실제 목판은 ‘하나뿐인 진본’이라는 원칙 하에 복제를 자제하고 있으며,
복제를 하더라도 교육·전시 목적에 한정되고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대체할 수 없습니다.

 

7. 누구나 열람 가능한 ‘디지털 실록’

이제는 실록을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열람할 수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실록 전권을 디지털화하여
한글 번역본과 원문, 색인, 주제별 검색 기능까지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 조선왕조실록 디지털 사이트:
https://sillok.history.go.kr

모바일에서도 열람이 가능하고,
특정 왕의 이름이나 사건만 검색해도 바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
연구자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훌륭한 학습 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8.실록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닙니다

조선왕조실록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500년의 정치, 외교, 백성들의 삶, 역병과 기후, 심지어 하늘의 움직임까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전쟁과 침략, 혼란과 절망 속에서도
백성들과 기록자들의 집념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실록은 조선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며,
그 자체로 한 나라가 자신을 어떻게 성찰하고 기억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그런 실록이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단지 과거를 지켰다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를 기록할 자격을 가진 민족이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실록을 검색해보세요.
왕의 말 한마디, 백성의 소리, 조선의 사계절이
그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기록은 남기면 역사고, 지키면 자부심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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