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그는 이성계와 같이 혁명으로 새로운 조선을 만든 인물입니다. 또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기본 설계를 한 사람이지만 결국 그의 끝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게 죽음을 당하고 맙니다. 조선은 정도전이 구상한 나라로 만들어 졌지만 만 오래동안 그는 조선의 영웅이 아니 죄인으로 남아있어야 했습니다

기본 프로필
- 이름: 정도전 (鄭道傳)
- 호: 삼봉(三峰)
- 출생: 1342년, 고려 경상도 봉화
- 사망: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 주요 활동: 조선 건국 설계, 정치 제도 정비, 한양 천도 주도
- 대표 저서: 『조선경국전』, 『불씨잡변』
목차
- 개천에서 용 난 집안, 그리고 어린 시절
- 유배지에서 깨달은 ‘백성’이라는 존재
- 이성계와의 만남, 혁명의 시작
- 조선이라는 나라를 설계하
- 이방원과의 충돌, 그리고 비극
- 패배한 혁명가, 그러나 남겨진 시스템
1. 개천에서 용 난 집안, 그리고 어린 시절
정도전은 명문집안의 출신의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집안은 지방 향리 가문에 출신으로 , 아버지 대에 이르러서야 중앙정계로 진출할 수 있었던 집안 이었습니다.
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겸은 청렴한 관직생활로 집안에 형편은 여전히 궁핍했으나 어린 정도전은 그런 아버지의 청겸한을 중요시 여겨 권력은 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책임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감각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후대에는 정도전이 출신이"서출"이라는 말이 전해지기는 하지만 아직은 야사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후대에 이런 이야기가 돌았던거 예측건데 정도전은 죽었지만 아직 경계해야 인물로 기득권층은 그의 출신을 어떻게든 깎아 내리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소문은 정도전이 기득권층인 "권문세족"에 대해 더욱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하고, 신분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개혁가로 성장하는 배경이 만들어졌습니다.

2. 유배지에서깨달은 ‘백성’이라는 존재
젊은 시절의 정도전은 엘리트 관료였습니다. 성균관에서 수학하며 이색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정몽주 등과 교류했습니다.
하지만 고려의 현실은 이상과 달랐습니다. 권문세족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고, 국가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권력 핵심과 충돌하게 되고, 1375년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비참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백성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굶주린 백성들은 물론이고 착취당하는 농민 그리고 평민이 노예로 절락해버리는 고려의 현실을 몸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는 능력이 확인 되지 않는 왕이 권력을 갖게 되면 어떻게 나라가 굴러가고 망하는지 고려의 왕들을 보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 왕권의 중심이 아닌 실력있는 신하의 중심으로 나라여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 갈 수 있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는 백성을 위한 나라 바로 민본사상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정도전은 민본사상이 있는 나라를 만들기로 결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3. 이성계와의 만남, 혁명의 시작
정도전은 유배생활이 끝나는데도 정계에 돌아가지 않고 오랜 유랑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정도전은 고려는 내부 개혁으로는 바꿀 수 없는 구조라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정도전은 한 인물에게 관심을 같게 되고 그를 찾아가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이성계입니다.
당시 이성계는 변방의 무장이었지만, 군사력과 명성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정도전은 그를 보고 확신합니다. 이 사람이라면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이 만남은 단순한 협력이 아니었습니다.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명분과 철학을 제공했고,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실행할 수 있는 힘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이 조합은 결국 위화도 회군이라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이후 그들은 단순히 권력을 잡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로 토지 제도를 개혁합니다.
과전법은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권문세족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백성에게 토지를 돌려주는 혁명이었습니다.

4. 조선이라는 나라를 설계하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됩니다.
하지만 나라를 세웠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을 ‘설계’하기 시작합니다.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도시 구조에 유교적 질서를 담아냅니다. 경복궁의 이름부터 사대문의 명칭까지 모두 철학이 담긴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선경국전』을 통해 국가 운영의 기준을 만듭니다. 이것은 단순한 법이 아니라, 국가의 뼈대였습니다.
그의 가장 급진적인 생각은 따로 있었습니다.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나라가 아니라 재상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나라.
왕은 상징이 되고, 실제 정치는 시스템과 관료가 담당하는 구조였습니다.
이 개념은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습니다. 왕권을 약화시키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불씨잡변』을 통해 불교를 비판하고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확립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국가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5. 이방원과의 충돌, 그리고 비극
정도전에게는 한 인물이 방해가 되었습니다. 조선을 건국 하기 전에는 좋은 동무였으나 조선이 건국하고 나서는 자신이 설계할 조선에 방해가 될 인물 바로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 이었습니다. 이성계는 무인으로 힘은 있었으나 학문에는 약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원은 힘도 있었지만 학문도 꽤 깊은 편이었습니다. 또 한 그는 다큰 성인이었습니다.
정도전이 꿈꾸는 조선에는 이방원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성계와 함께 이방원과 그의 형제들을 배제하고 이성계의 어린 막내 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을 합니다.
그의 계획대로 조선은 만들어지고 설계가 되었지만 하지만 승자는 이방원 이었습니다.
조선건국 7년후 1398년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방원의 주체로 일어난 이 난에서 정도전은 제거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구걸했다는 이야기가 보편적이지만 승자의 기록이어서 개인적으로 믿음은 가지 않습니다. 조선이라는 기본 구축을 한 인물이 그리 허망하게 갔다는게 인생이 허무함을 느끼게 하는 한 장면인것 같습니다.
결국 정도전는 나라를 설계한 인물이지만, 권력 구조 속에서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6. 패배한 혁명가, 그러나 남겨진 시스템
정도전은 정치 싸움에서는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그의 복원은 조선의 끝의 고종 8년에 됩니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죽였지만 그의 시스템은 망가뜨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갖고있는 민본정신을 밑에 깔고 조선의 행정 구조, 법치 시스템, 수도 구조 이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게 했습니다.그래서 조선은 500년을 이어갔고, 그 기반에는 정도전의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는 권력에서는 졌지만 시스템에서는 이긴 인물이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을 세운 공신에서 영원한 죄인으로 조선 시대 내내 있었지만 조선의 설계자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 못하는 사실입니다.
비록 그의 정치적 이상은 완전히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가 남긴 구조와 철학은 이후 조선을 움직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의 정책이 완벽하다고 애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그시대에 왕을 배제하고 능력이 있는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시대를 앞선 인물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