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이 이승만의 편이었을까? 두 번의 대선, 두 후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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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이승만의 편이었을까? 두 번의 대선, 두 후보의 죽음

by 5914 2026.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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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경쟁 후보가 투표일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는 일이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1956년에는 신익희가, 1960년에는 조병옥이었습니다.

한 번도 드문 일인데 두 차례나 이어졌으니, 이승만에게는 하늘이 편을 들어준 듯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두 선거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1. 선거 열흘 전 세상을 떠난 신익희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세 번째 당선에 도전했습니다. 이에 맞선 민주당 후보는 독립운동가이자 국회의장을 지낸 신익희였습니다.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신익희의 유세 현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였고, 특히 5월 3일 한강 백사장 연설에는 수많은 청중이 몰려 그의 인기를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이틀 뒤,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956년 5월 5일, 호남 지역 유세를 위해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신익희가 뇌일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둔 날이었습니다.

며칠 전까지 군중 앞에서 연설하던 후보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지지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실제 선거에서는 이미 사망한 신익희를 향한 추모표가 대거 나왔지만, 이 표들은 무효로 처리됐습니다.

다만 이때 이승만이 단독으로 선거를 치른 것은 아닙니다. 조봉암이 남아 이승만과 경쟁했습니다. 선거 결과 이승만이 당선됐고, 조봉암은 유효투표의 약 30%를 얻었습니다. 어쩜 신익희가 살아있었다면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2. 이승만은 어떻게 계속 출마할 수 있었을까?

당시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정하고, 중임은 한 번만 허용했습니다. 따라서 1948년 처음 당선되고 1952년 재선한 이승만은 원래 1956년 선거에 다시 출마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1954년 ‘사사오입개헌’으로 초대 대통령에게는 중임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를 만들었습니다.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었으므로, 사실상 자신에게만 횟수 제한 없이 대통령을 계속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물론 선거 없이 평생 대통령을 한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4년마다 선거를 치르되, 당선되기만 하면 몇 번이든 연임할 수 있도록 바꾼 것입니다. 이 조항 덕분에 이승만은 1956년 3선에 이어 1960년 4선에도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3. 네 해 뒤, 조병옥마저 선거 전에 사망하다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은 조병옥을 후보로 내세웠습니다. 조병옥은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내무부 장관 등을 지낸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투표일을 앞두고 후보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조병옥은 1960년 2월 15일,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대통령 선거일인 3월 15일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4년 전에는 신익희가 선거 열흘 전에, 이번에는 조병옥이 한 달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민주당은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연이어 후보를 잃었습니다.

1956년에는 조봉암이 남아 이승만과 경쟁했지만, 1960년에는 다른 대통령 후보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승만은 단독 후보로 대통령 선거를 치렀습니다.

4. 하늘이 편을 들어도 국민의 뜻까지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신익희와 조병옥은 모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번이나 유력한 경쟁자가 선거 직전에 사라졌으니, 이승만에게는 하늘이 편을 들어준 듯한 상황이었습니다.

1960년 이승만은 단독 후보로 대통령 선거를 치러 당선됐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자신을 뒷받침하고 유사시 대통령직을 이어받을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했습니다. 당시에는 대통령과 부통령을 각각 따로 뽑았기 때문에, 이승만의 당선만으로 이기붕의 자리까지 보장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3·15 부정선거에 분노한 국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항의는 4·19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국민의 퇴진 요구 앞에서 이승만은 1960년 4월 26일 하야 의사를 밝혔습니다.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이었습니다.

두 번이나 경쟁자를 잃는 행운이 따랐지만, 국민의 마음까지 붙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설령 하늘이 내린 대통령이라 해도, 국민이 거부하면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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