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풍백화점를 붕괴 하게 만들어써도 뻔뻔한 이준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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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아야 할 사건

삼풍백화점를 붕괴 하게 만들어써도 뻔뻔한 이준 회장 !!!!

by 5914 2026.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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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502명의 사망자와 900명이 넘는 부상자가 일어난 사건으로  국민들이 충격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는데 삼풍백화점의 이준 회장의 인터뷰내용에 사람들은 그 뻔뻔함에 분노하고 말았습니다. 

"여보쇼! 백화점이 무너진다는 것은 손님도 피해도 갔지만, 우리 회사도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 

이준 회장은 자신의 욕심으로  자멸된 희생자와 그의 가족은 보이지않는 답이었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재산만이 붕괴된 아픔과 분노만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글은 이준 회장의 욕심으로  삼풍백화점 어떻게 세워지고 붕괴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1. 이준 회장의 욕심은 어디서 시작됐나

삼풍백화점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준 회장을 봐야 합니다.

이준은 유통업 전문가로 출발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군과 권력 주변의 인맥을 바탕으로 성장한 사업가에 가까웠습니다. 이후 건설업에 뛰어들었고, 강남 개발의 흐름을 타며 큰 부를 쌓았습니다.

1970년대 이후 서울 강남은 빠르게 바뀌고 있었습니다. 논밭과 빈 땅이 아파트 단지와 도로, 상업지구로 변해갔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서초동 일대는 새로운 부촌으로 떠올랐고, 이준은 그곳에 삼풍아파트를 세우며 막대한 자산을 확보했습니다,

삼풍백화점은 바로 그 삼풍아파트 단지 옆에 계획된 건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대한민국 최고급 백화점”을 세우겠다는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상가 성격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상권의 가능성이 커 보이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평범한 상가보다 백화점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욕심은 건물의 운명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2. 처음부터 백화점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었다

상가와 백화점은 완전히 다른 건물입니다.

상가는 비교적 제한된 인원이 오가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백화점은 다릅니다. 수많은 고객이 들어오고, 층마다 매장이 들어서며, 식당가와 창고, 냉장시설, 공조시설, 에스컬레이터 등 무거운 설비가 필요합니다.

즉, 백화점은 처음 설계 단계부터 훨씬 더 치밀한 구조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가 건물에서 백화점으로 용도를 바꾸려고 이준회장은 시도합니다. 맨 처음 맡았던 우성 건설과 설계자는 분명 불가능하다고 선언을 하지만 이준 회장의 욕심을 맞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운행하는 삼풍건설사를 투입해 삼풍백화점으로 용도로 바꿔 설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건물의 목적이 바뀌면 구조도 다시 검토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더 많이 들어오고, 하중이 더 커지고, 설비가 더 무거워진다면, 기둥과 바닥, 전체 구조를 새롭게 따져야 합니다.

그러나 삼풍은 안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장을 더 넓게 보이게 하고, 수익 공간을 더 확보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겉으로는 고급 백화점이 되어갔지만, 속으로는 위험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3. 상가에서 백화점으로, 욕심이 구조를 바꾸다

백화점은 넓어 보여야 합니다.

고객이 들어왔을 때 시야가 탁 트여야 하고, 매장 공간이 많아야 하며, 에스컬레이터와 통로도 시원하게 보여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요구가 건물의 뼈대를 건드렸다는 점입니다.

건물에서 기둥은 사람의 다리와 같습니다.
기둥이 충분히 강해야 위층의 무게를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장 면적을 넓히려면 기둥은 불편한 존재가 됩니다.
기둥이 많으면 상품 진열도 어렵고, 고객 동선도 답답해 보입니다.

삼풍백화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위험한 선택을 했습니다.

건물의 안전보다 매장의 넓이와 화려함이 우선되었습니다.
전문가의 경고와 구조적 상식보다 경영자의 욕심이 앞섰습니다.

특히 삼풍백화점은 흔히 무량판 구조로 설명됩니다. 무량판 구조는 보 없이 바닥판을 기둥이 직접 받치는 방식입니다.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둥과 바닥이 만나는 부분에 하중이 집중되기 때문에 구조 안전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삼풍백화점에서는 이 중요한 구조가 약해졌습니다. 기둥과 바닥이 충분히 안전하게 설계·시공되지 않았고, 건물은 점점 위험한 상태로 변해갔습니다.

욕심은 처음에는 용도를 바꾸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설계를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건물의 뼈대를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4. 기둥은 약해지고 건물은 무거워졌다

삼풍백화점 붕괴의 핵심은 간단히 말하면 이것입니다.

건물은 더 무거워졌는데, 그 무게를 버틸 구조는 더 약해졌습니다.

매장 공간을 넓히기 위한 구조 변경, 기둥과 철근 문제, 바닥판과 기둥 접합부의 취약성은 삼풍백화점 붕괴 원인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습니다.

여기에 5층 증축과 한식당가 문제가 더해졌습니다.

한식당은 일반 매장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온돌 바닥을 만들기 위해 콘크리트가 더 들어가고, 대형 냉장고와 주방 설비, 식기류, 물과 가스 설비까지 올라갑니다. 삼풍백화점의 기둥의 간신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옥상에 설치된 냉각탑의 소음이 심해 주변 주민들의 민원으로 자리를 옯겨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비용 절감하기 위해 냉각탑을 옥상에서 질질 끌어 옮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과정에서 구조적  큰 충격에서 균열이 누적되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삼풍백화점 건물은 계속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벽의 균열 , 천장 처짐, 바닥 갈라짐 등 여러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신호는 무시되었습니다.

5. 행정은 왜 브레이크가 되지 못했나

삼풍백화점 참사를 이준 회장과 삼풍그룹의 욕심만으로 설명하면 부족합니다.

당시에도 대형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여러 행정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설계 변경, 용도 변경, 증축, 준공, 영업과 관련된 절차가 있었습니다. 마음대로 짓고 마음대로 문을 열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왜 행정은 막지 못했을까요?

삼풍백화점과 관련해서는 불법 설계 변경과 인허가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책임이 실제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삼풍백화점 불법 설계 변경 등을 승인해 주고 뇌물을 받은 전 서초구청장들에게도 형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전 서초구청장 이충우, 황철민에게 각각 징역 10개월과 추징금이 선고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삼풍백화점은 기업 혼자 만든 참사가 아니었습니다.
기업의 욕심을 막아야 할 행정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참사였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건물을 위험하게 만든 1차 책임은 삼풍 측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험한 건물이 실제로 시민 앞에 문을 열도록 허용한 행정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준 회장의 욕심이 가속페달이었다면,
행정은 브레이크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6. 붕괴 당일, 마지막 기회도 놓쳤다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은 마지막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5층 식당가에서는 이상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바닥과 천장에 문제가 보였고, 건물 내부에서는 심상치 않은 소리와 진동이 감지되었습니다.

이때 내려야 할 결정은 단 하나였습니다.

영업 중단.
고객 대피.
직원 철수.

하지만 삼풍백화점은 즉각적인 전면 대피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구역을 막고도 영업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날 건물이 무너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경 붕괴시간 약 20여 초 .  이후 사망 502명, 부상 937명, 실종 6명이라는 이라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욕심 많은 한 노인때문에 생겨난 비극이라는 게  정말로 화가 납니다. 

 

 

7. 그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나

사고 이후 국민적 분노는 거셌습니다.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건물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위험을 알고도 영업을 계속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 과정에서 허가를 내준 사람들은 누구인가.

법적 처벌은 이루어졌습니다.

대법원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관련해 이준 삼풍그룹 회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죄 등으로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또한 불법 설계 변경 등을 승인해 주고 뇌물을 받은 전 서초구청장들에게도 징역형과 추징금이 선고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처벌이 너무 약하다고 느꼈습니다.

502명이 사망했고, 937명이 다쳤으며, 6명이 실종됐습니다.
그런데 책임자들의 형량은 국민 감정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법원은 당시 법률 체계 안에서  가장 높은 형벌을 주었다고 하지만  그 형벌로는 국민 어느 누구도 타당성과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이후 이준회장은 7년 6개월을 다 살고 나와 6개월 후 사망을 했다고 합니다.   

1일 오후 구속된 삼풍백화점 대표 이준회장, 이한상사장, 건물 구조설계및 안전진단을 담당한 이학수 '한'건축연구소장, 삼풍 시설이사 이영길씨(우로부터). 출처 연합뉴스

  

8. 참사 이후 정부는 무엇을 바꾸었나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삼풍백화점 붕괴까지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은 “안전 시스템 전체가 무너진 것 아니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참사 이후 정부는 주요 시설물 안전점검과 제도 정비에 나섰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시설물 안전관리 체계 강화였습니다. 정부 자료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제정된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국가 주요 시설물 안전관리의 근간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법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다리, 터널, 대형 건축물 같은 주요 시설물을 방치하지 말고,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상태를 평가하고, 관리 책임을 분명히 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인위적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재난관리 체계도 정비되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재난관리법」이 폭발, 붕괴, 교통사고 등 인위적인 원인에 의한 재난을 적용 대상으로 삼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난관리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법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변화는 의미가 큽니다.

이전에는 재난이라고 하면 태풍,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먼저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삼풍백화점 참사는 사람이 만든 시설물, 사람이 방치한 위험, 사람이 무시한 경고도 국가가 관리해야 할 재난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켰습니다.

물론 법이 생겼다고 위험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도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제 현장에서 지키는 태도입니다.

삼풍 이후 정부는 안전관리 제도를 강화했지만, 한국 사회는 이후에도 여러 대형 사고를 겪었습니다. 이것은 법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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