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사오적 권중현 – 펜 하나로 조선을 넘긴 조용한 매국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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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일제시대

을사오적 권중현 – 펜 하나로 조선을 넘긴 조용한 매국노

by 5914 2025.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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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현(權重顯)” — 흔히 ‘을사오적’ 중 하나로 기억되는 이 인물은 단순한 매국노가 아닙니다. 그는 무기를 들지도 않았고, 직접 백성을 탄압한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펜 하나로 나라의 경제를 넘겼고, 구조적인 친일체제를 설계하는 데 조용히, 그러나 깊이 가담한 인물이었습니다.



1. 농상공부대신이란? – ‘경제 대통령’에 해당하던 자리

권중현은 1905년, 을사늑약 당시 농상공부대신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현대적 의미로 표현하자면 산업부 + 농림부 + 중기부 + 상공회의소 총괄 장관을 모두 합친 수준의 ‘경제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농상공부대신은 다음과 같은 핵심 권한을 가졌습니다:

  • 농업 정책 결정 및 농지 관리
  • 상업·무역 정책 및 관세 조정
  • 공업(수공업 및 초기 근대산업) 진흥과 자원 개발
  • 기술 도입, 외국 상품 관리, 조세 제도 자문

즉, 조선의 쌀부터 시장, 광산, 공장까지 모두 그의 손안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서명한 ‘을사늑약’은 단순히 외교권만 넘긴 것이 아니라, 조선의 경제적 생명줄을 일본에게 넘겨준 조약이기도 했습니다.

 

 

 

2. 개화파에서 친일파로 – 조용한 변절의 길

권중현은 처음부터 친일파였던 인물은 아닙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개화파 실무 관료로 성장했습니다. 1882년 문과에 급제한 후 승정원, 규장각, 홍문관을 거쳐 내무아문과 농상공부에서 실무를 담당했으며, 초기에는 김홍집 내각에 참여하여 우정국 총판을 맡는 등 근대화를 실현하는 관료형 개화파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점 현실 정치에 순응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됩니다.

  • 을미사변 이후 이완용 등 친일 내각에 참여
  •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당시 농상공부대신으로서 적극 가담
  • 이후 일본 제국에 충성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고정

그는 자주와 독립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강자와 협력”하는 실용주의적 관료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협력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일제에 유리한 조선 해체의 실무자 역할이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3. 펜 하나로 저지른 구조적 탄압 – 보이지 않는 억압자

권중현에게는 백성의 집을 불태운 군대도, 시위를 진압한 명령서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펜 하나로 백성들의 삶을 기울게 만들었습니다.

  • 을사늑약 서명 → 외교권과 통상권 박탈
  • 관세 주권 상실 → 일본 상품 무관세 유입
  • 쌀 대량 수출 → 조선 내 식량난, 백성 굶주림
  • 조선 산업 몰락 → 수공업자, 상인, 농민 몰락
  • 중추원 고문 활동 → 일본 식민 정책에 자문 제공

여기에 더해, 그는 식민지 차별 구조를 정당화하는 논리까지 제공했습니다.

"조선인은 아직 근대 문명에 익숙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미숙하므로 일본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다"
그는 이러한 입장을 통해 일제의 조선인 차별 정책을 정당화하는 논리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동민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조선 청년들에게 “황국신민 정신”을 주입했습니다. 직접 채찍을 든 일은 없지만, 정책과 논리
로 조선을 무너뜨린 이론적 억압자였습니다.

4. 그는 무엇을 받았는가 – 조용한 보상, 큰 혜택

  • 1907년 훈1등 욱일동화대수장 수훈
  • 1910년 한일병합 후 ‘자작(子爵)’ 작위 수여
  • 막대한 은사금 수령 (당시 수천~수만 원 이상)
  • 중추원 고문으로 예우 받으며 권력 유지
  • 귀족의 예에 따른 장례

그는 어떠한 참회도 없이, 조선 백성이 일본의 지배에 시달릴 때에도 자신의 부와 작위를 누리며 살아갔습니다.

5. 그의 만로와 후손은?

권중현은 1934년 81세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일본 제국의 귀족으로서 예우를 받으며 살았으며, 그 후손 역시 반성이나 사죄의 입장을 밝힌 기록이 없습니다.

 

 마무리하며

을사오적 중에는 이완용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인물도 있고, 비교적 조용히 그러나 더 깊숙이 조선을 무너뜨린 인물도 있습니다. 권중현은 후자입니다. 그는 “행정”이라는 이름으로, “경제”라는 이름으로, 칼보다 무서운 펜을 들고 조선을 일본의 손에 넘겼습니다.
그는 무지해서 나라를 팔지 않았습니다. 그는 똑똑했고, 계산적이었으며, 정확히 무엇이 잘못인지 알면서도 침묵했고 묵인했습니다. 그는 조선이 일본과 차별받는 것을 "합리적"이라 말했고, 결국 조선 백성의 운명까지 그렇게 규정해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권중현이라는 이름을 단지 을사오적의 ‘한 명’으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가 어떤 권력의 자리에 있었고, 그 자리를 어떻게 써서 조선을 무너뜨렸는지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책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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