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났는데, 영국의 재정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714)을 치른 뒤 영국 정부는 막대한 국가부채를 떠안게 됩니다. 세금만으로는 감당이 어려웠고, 빚을 정리할 ‘새로운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입니다.

1) 남해회사는 “무역회사”였을까요?
남해회사는 겉으로는 스페인령 아메리카(당시 영국이 ‘남해’라 부르던 지역)와의 무역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설립 취지에서 핵심은 따로 있었습니다. 정부 부채를 회사가 떠안고, 그 대가로 회사는 특권을 받고, 투자자(국채 보유자)는 국채를 회사 주식으로 바꾸는 구조, 즉 국가부채를 ‘주식화’해서 정리하는 계획이 핵심이었습니다.
이 구조는 얼핏 모두에게 이득처럼 보였습니다.
- 정부는 부채를 정리할 돌파구를 얻습니다.
- 투자자는 국채 이자 대신 ‘주가 상승’이라는 큰 이익을 기대합니다.
- 회사는 특권과 수수료,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사람들을 홀린 단어, ‘아시엔토’입니다
남해회사가 홍보에서 내세운 키워드 중 하나가 아시엔토(Asiento)였습니다. 스페인 왕실이 특정 주체에게 스페인령 아메리카에 노예를 공급할 계약(권리)을 부여하는 제도인데, 남해회사는 이를 운영하며 실제로 대서양 노예무역에 관여했습니다.
문제는 대중이 아시엔토를 “남미 무역의 황금열쇠”처럼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포스터와 소문은 잉카의 황금, 은광, 끝없는 시장을 상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스페인 제국의 통제는 강했고, 무역은 제약이 많았으며, 노예무역은 전쟁·질병·침몰 위험이 큰 고위험 사업이었습니다. 기대만큼 안정적 ‘대박’이 보장되는 구조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시장은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들었습니다. “독점권”이라는 단어가 환상을 키웠습니다.

3) 불을 붙인 건 금융기법이었습니다
1720년에 남해회사는 더 큰 규모의 국가부채 인수·전환을 추진했습니다. 많은 채권자들이 국채를 남해회사 주식으로 바꾸고, 주가가 오르자 더 많은 사람이 뛰어들었습니다. 주가 상승은 다시 “더 오를 것”이라는 믿음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버블을 키운 장치는 단순한 열광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주식을 한 번에 전액 내기보다 분할 납입(구독) 같은 방식이 활용되었고,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리거나 신용을 돌려 투기에 참여하는 사례도 늘었습니다. 쉽게 말해 적은 돈으로 더 큰 베팅이 가능해지면서 상승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다만 이런 구조는 반대로, 하락이 시작되면 훨씬 잔혹해집니다.
4) 런던 전체가 ‘주식 이야기’만 하던 여름이었습니다
1720년 봄~여름, 런던의 커피하우스와 거래 거리는 주식 이야기로 가득 찼습니다. 귀족과 상인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이 투기에 끌려 들어갔습니다. “한 달 만에 두 배가 됐다”, “이제는 1,000파운드를 간다” 같은 말이 떠돌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시장을 읽는 천재가 된 듯한 착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남해회사뿐 아니라 각종 신생 회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업 내용이 황당하거나 모호한 회사까지도 ‘주식’이란 이름만으로 돈을 끌어모았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테마주·사기성 공모가 한꺼번에 번진 셈입니다. 버블은 회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금융시장 전체에 전염된 열병이었습니다.
5) “천재도 못 피한” 뉴턴의 사례입니다
남해 버블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물 중 하나가 아이작 뉴턴입니다. 뉴턴은 처음엔 이익을 보고 빠져나왔다가, 주변의 ‘더 큰 수익’ 소식에 다시 뛰어들어 손실을 봤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세부 내용은 전승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 사례가 상징하는 건 분명합니다. 버블에서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무지보다도 군중 심리와 ‘나만 놓치면 손해’라는 감정입니다.

6) 무너짐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주가가 오를 때는 모두가 ‘합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실제 수익이 이 가격을 뒷받침하나?”라는 질문이 고개를 들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동시에 빠져나가려 하면 매수자는 사라지고, 가격은 급락합니다.
특히 주식을 담보로 빚을 냈던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입니다. 주가가 떨어지면 담보 가치가 줄어들어 추가 담보를 요구받고, 이를 못 내면 강제 청산이 발생합니다. 그 매도가 다시 가격을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만들어집니다. 1720년 하반기 남해회사 주가는 급격히 추락했고, 손실은 사회 곳곳으로 번졌습니다.
7) 조사와 처벌, 그리고 수습입니다
붕괴 뒤 영국 정치권은 책임 소재를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해회사 운영 과정에서 내부자 거래·정치권과의 유착 의혹이 불거졌고, 의회 조사와 처벌이 이어졌습니다. 동시에 정부는 금융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수습책도 모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로버트 월폴 같은 인물이 위기를 관리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에필로그: 반복되는 역사
남해 버블은 300년 전 사건이지만, 패턴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실체(현금흐름)보다 서사(꿈)가 가격을 밀어 올리고, 신용과 레버리지가 상승을 가속하고, 하락이 시작되면 공포가 연쇄반응을 만든다.”
대상이 바뀔 뿐, 구조는 자주 반복되었습니다.
2000년에는 인터넷 거품이 터졌습니다. 실체보다 기대가 앞선 닷컴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했다가 급락했습니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위험한 자산이 ‘안전한 상품’처럼 포장되어 팔리다가, 결국 신뢰가 무너지며 시장이 붕괴했습니다.
2017년에는 암호화폐 광풍이 불었습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자산 가격이 급등했다가 큰 변동 속에서 급락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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