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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역사

삼성 64K D램의 탄생과 생존‘될 리 없다’는 말 속에서 끝까지 버틴 시간

by 5914 2026.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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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삼성 반도체 이야기가 다시 나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묻습니다.
“삼성은 원래 반도체를 잘하던 회사 아니었나?”
하지만 이 질문에는 아주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할 수 있었던 조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1.반도체를 할 수 없던 나라에서 나온 선언

1983년의 대한민국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기술이 없었다는 말은 그저 교과서적인 표현일 뿐이고, 정확히 말하면 반도체라는 산업을 상상할 경험 자체가 없는 나라였습니다. 반도체를 설계해 본 사람도 없었고, 반도체 공정을 실제로 돌려본 공장도 없었으며, 반도체 공장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병철은 반도체를 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모험이 아니라, 거의 무모에 가까운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반도체는 ‘해볼 만한 사업’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한국 산업이 멈출 수밖에 없는 선택지에 가까웠습니다.

값싼 노동력에 기대는 산업은 언젠가 무너질 것이고, 자원이 없는 나라가 살아남으려면 결국 기술 그 자체가 상품이 되는 산업으로 가야 한다는 판단은 이미 그에게 명확했습니다. 반도체는 작지만 비쌌고, 격차가 벌어질수록 따라잡기 어려운 산업이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카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시기였습니다.
그 시점의 한국은 반도체를 “잘할 준비”가 아니라, 시작할 자격조차 없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2.선언 이후, 해외에서 돌아온 것은 냉소였다

삼성의 반도체 진출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과 일본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습니다.
“한국이 반도체를?”
“가능하다면 그건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삼성이 실제로 사람을 보내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미묘하게 달라졌습니다. 비웃음은 곧 경계로 바뀌었습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기술은 곧 경쟁력이었고, 한 번 내준 기술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미국의 협력, 그리고 분명한 선

삼성은 개발 초기, 미국의 반도체 기업 Mostek과 접점을 가집니다.
64K D램의 기본 구조와 설계 개념을 얻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계약은 성사됐고, 설계에 대한 큰 틀은 손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설계를 얻었다고 해서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도체는 설계보다 공정이 훨씬 더 잔혹한 산업입니다.

온도를 몇 도로 유지할 것인지, 몇 분을 기다릴 것인지, 가스를 어떤 순서로 얼마나 흘릴 것인지 같은 수치 하나가 결과를 갈라놓습니다. 미국은 설계의 방향은 보여주었지만, 그 수치들은 끝내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던지면 답은 돌아왔지만, 항상 결정적인 숫자만 빠져 있었습니다.

 

 

 

4.일본에서 마주한 더 두꺼운 벽

일본은 당시 메모리 반도체의 중심지였습니다.
NEC, Toshiba, Hitachi 같은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쥐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공장을 보여주긴 했습니다. 장비도 돌아가고, 작업자들도 움직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배울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공정의 핵심으로 다가갈수록 설명은 흐려졌고, 수치는 사라졌으며, 질문은 점점 환영받지 못하는 행동이 되어갔습니다.

“그건 내부 기준입니다.”
“그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 말은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됐습니다.

개발자들이 상의하는 AI이미지

5.줄자를 들 수 없는 공장, 몸이 기준이 되다

공장 안에서는 노트를 꺼내는 것도, 줄자를 들고 다니는 것도 눈에 띄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보폭으로 장비 사이 거리를 재고, 복도 폭을 발걸음 수로 기억하고, 배관 길이를 손뼘으로 가늠하며 머릿속에 저장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일 그 걸음 하나, 손짓 하나가 나중에는 공장을 다시 그리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면, 씻을 새도 없이 종이를 펼쳐 그날 본 장비 배치와 동선을 기억이 날아가기 전에 그려 내려갔습니다. 이 작업은 기록이 아니라 기억과의 싸움이었고, 하루만 지나도 흐려지는 장면을 붙잡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습니다.

6.기술보다 더 큰 문제, “공장이 없다”

해외 연수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도체를 만들 공장이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반도체는 실험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양산을 위해서는 먼지, 진동, 온도, 습도를 동시에 제어하는 공간이 필요하고, 그 공간 자체가 기술의 일부가 됩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런 공장을 지어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병철은 속도를 택합니다.
“늦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공장은 통상 18개월 이상이 걸립니다. 설계, 시공, 장비 반입, 환경 안정화까지 어느 하나 쉬운 단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삼성에 내려온 지시는 단순했습니다.

6개월.

기흥의 공사 현장은 전쟁터가 됩니다. 한겨울에 콘크리트가 얼어붙자 천막을 치고 난로를 피웠고, 밤과 낮의 구분 없이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공장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반도체 사업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증명이었습니다.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한겨울애도 난로를 지피면서 작업하는 AI이미

7.공장과 개발이 동시에 굴러가던 시간

공장이 완성되기도 전에 개발은 진행됐고, 공정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험은 반복됐습니다. 불량이 나오면 처음으로 돌아갔고, 이유를 알 수 없어 다시 전 과정을 점검했습니다.

이 시기는 기술 싸움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닳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공장이 멈추면 개발도 멈추고, 개발이 멈추면 선언은 실패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8.1983년 12월 1일, 64K D램 성공 그러나 더 거친 생존의 시간

마침내 1983년 12월 1일, 삼성은 64K D램 개발 성공을 발표합니다.
세계에서 세 번째, 한국 최초의 성과였습니다.

언론은 이를 기적이라 불렀지만, 현장의 개발자들에게 먼저 찾아온 감정은 환호보다 숨을 돌릴 수 있다는 안도감에 가까웠습니다. 너무 많은 실패와 반복을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64K D램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곧바로 일본 기업들의 가격 공세가 시작됐고, 삼성은 긴 적자의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개발은 멈추지 않았고, 256K, 1M, 4M으로 이어지는 메모리 경쟁 속에서 삼성은 단순한 추격자가 아니라 기술 선택으로 승부하는 기업으로 변해 갔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메모리 세계 1위로 이어졌고, 지금의 삼성 반도체를 만들었습니다.

9.그리고 지금, 64K에서 HBM으로

오늘날 삼성은 다시 한 번 전환점 앞에 서 있습니다.
AI 시대의 핵심으로 떠오른 HBM은 과거의 D램과는 전혀 다른 경쟁을 요구합니다. 기술의 속도만으로는 부족하고, 생태계와 신뢰, 그리고 선택의 타이밍이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64K D램은 많은 돈을 벌어준 제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칩은 삼성이 공장부터 기술까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처럼, 지금의 삼성 역시 다시 한 번 선택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64K D램은 작은 칩이었지만, 그 안에는 기술도 없고 경험도 없던 나라에서 사람과 시간으로 불가능을 밀어붙였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삼성 반도체의 역사는 처음부터 고속도로가 아니었고, 아무도 가지 않으려던 길에서 사람이 먼저 닳아가며 만든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이야기는 다시 읽힐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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