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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역사

300년 전 파리를 뒤흔든 투자 광풍, 미시시피 거품 사건

by 5914 2026.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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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백만장자(Millionaire)'라는 단어가 언제 처음 생겨났는지 아시나요? 놀랍게도 이 단어는 300년 전 프랑스 파리의 한 투자 광풍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오늘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금융 사기극이자, 현대 투자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주는 '미시시피 거품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파산 직전의 화려한 제국

1715년,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72년간의 긴 통치를 마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베르사유 궁전은 유럽에서 가장 화려했지만, 그 이면에는 처참한 현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국가 부채는 약 30억 리브르. 1년 동안 걷는 세금이 1억 4천만 리브르였는데, 그중 9천만 리브르가 빚 이자를 갚는 데 쓰였어요. 원금은 생각도 못 하고 이자만 겨우 갚는 상황이었죠. 지금으로 치면 연봉 5천만 원인데 빚 이자만 3천만 원 내는 격입니다.

게다가 정부는 돈이 부족할 때마다 금화와 은화의 함량을 몰래 줄이는 비겁한 수법을 썼고, 국민들은 정부 화폐를 전혀 믿지 않았어요. 경제는 완전히 얼어붙었고, 프랑스는 국가 부도 직전이었습니다.

2.천재 도박사의 등장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존 로(John Law)라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남자였습니다.

이 사람의 이력이 정말 가관이에요. 런던에서 여자 문제로 결투를 벌이다 사람을 죽여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극적으로 탈옥해서 유럽을 떠돌아다닌 도박사였거든요. 하지만 그는 단순한 건달이 아니었습니다. 도박판에서 확률을 계산하며 돈을 벌면서 금융 시스템에 눈을 뜬 천재였죠.

존 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은행 시스템을 목격하고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금과 은은 그냥 금속 덩어리일 뿐이야. 진짜 중요한 건 '신용'이지. 국가가 보증만 해준다면 종이로 만든 돈도 얼마든지 쓸 수 있어!"

300년 전에는 완전히 미친 소리였지만, 빚더미에 앉아 자살까지 고민하던 섭정 필리프는 이 제안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니까요.

3단계로 설계된 완벽한 계획

존 로는 단순히 지폐만 찍어낸 게 아니었어요. 아주 치밀한 3단계 전략을 세웠죠.

  • 1단계(1716년): 프랑스 최초의 국립은행 '방크 제네랄'을 설립했어요. 무거운 금화 대신 가벼운 종이 지폐를 발행하고, 정부는 세금을 이 지폐로만 받기로 했죠. 사람들이 처음엔 의심했지만, 시장에 돈이 돌기 시작하면서 죽어있던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 2단계(1717년): 북미 루이지애나 개발권을 가진 '미시시피 회사'를 만들었어요. 그는 화려한 팜플렛으로 프랑스 국민들에게 미시시피를 황금의 땅으로 포장했습니다. "원주민들이 금을 돌멩이처럼 취급한다"는 식의 가짜 뉴스를 마구 퍼뜨렸죠.
  • 3단계(1719년): 정부와 손잡고 기막힌 제안을 합니다. "정부한테 받을 빚 문서를 우리한테 주면, 대신 앞으로 대박 날 미시시피 회사 주식을 줄게!" 정부는 현금 안 주고 종이 주식으로 빚을 털어버릴 수 있었고, 국민들은 이자 낮은 채권보다 폭등할 것 같은 주식을 더 원했어요.

4.광기에 빠진 파리

1719년 하반기, 파리는 완전히 미쳐버렸습니다.

미시시피 회사 주가는 연초 500리브르에서 연말 10,000리브르를 넘어섰어요. 1년도 안 돼서 무려 20배가 오른 겁니다. 요즘으로 치면 500만 원 투자해서 1억 원 된 거죠.

파리의 캉캉푸아 거리는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하인이 하루아침에 주인보다 부자가 되고, 마차를 끌던 사람이 벼락부자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바로 이 시기에 '백만장자(Millionaire)'라는 단어가 역사상 처음 등장했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주식 거래소가 너무 붐비다 보니 서류를 쓸 책상이 부족했대요. 그때 한 곱사등이가 자기 등을 책상 대용으로 빌려주고 거금을 벌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과부는 주식으로 돈을 벌고 너무 기뻐서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죠.

존 로는 프랑스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거리마다 "나도 부자 됐다!" 하는 환호성이 울려퍼졌어요.

5.붕괴는 언제나 갑자기 온다

하지만 모든 파티에는 끝이 있죠. 문제는 실제로 미시시피에서 금이 나왔느냐는 거였어요.

답은 '전혀'였습니다. 현지로 보낸 탐험대들은 빈손으로 돌아오거나 병들어 죽었어요. 실제로는 모기와 악어만 득실거리는 늪지대였으니까요. 수익은 하나도 없는데 주가만 계속 오르니, 존 로는 주가를 유지하기 위해 지폐를 미친 듯이 찍어댔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을까요? 시중에 돈이 너무 많아지면서 물가가 폭등했어요. 빵값이 6배, 고깃값은 수배로 뛰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겁니다.

1720년 초, 결정타가 날아왔습니다. 왕족인 콩티 공이 주식을 다 팔아치우고 그 돈을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한 거예요. 존 로는 어쩔 수 없이 금을 내줬지만, 이건 시장에 엄청난 경고 신호였죠.

"왕족이 금을 찾아간다고? 혹시 은행에 금이 부족한 거 아냐?"

사람들이 은행으로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모두가 "내 돈 금으로 바꿔줘!"라고 외쳤어요. 하지만 은행에는 찍어낸 지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양의 금만 있었죠.

정부는 급하게 금 태환을 중지하고 지폐 사용을 강제했지만, 이미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어요. 화난 사람들이 은행을 습격했고,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압사하거나 군대의 총에 맞아 죽었어요.

하루아침에 부자가 됐던 사람들은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고, 평생 모은 재산을 날린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파리는 축제 분위기에서 장례식장으로 바뀌었어요.

6.비참한 결말과 역사의 교훈

프랑스의 구원자에서 '국가적 사기꾼'으로 추락한 존 로는 1720년 12월, 분노한 군중을 피해 여장을 하고 밤중에 프랑스를 탈출했습니다. 그는 전 유럽을 떠돌며 재기를 노렸지만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어요. 결국 1729년 베네치아에서 폐렴에 걸려 빈털터리로 쓸쓸히 죽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프랑스가 입은 상처였어요. 영국도 비슷한 시기에 '남해 거품 사건'을 겪었지만, 프랑스의 타격이 훨씬 치명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영국은 중앙은행이 살아남았지만, 프랑스는 은행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무너졌거든요.

이 사건 이후 프랑스 사람들은 '지폐'와 '은행'을 극도로 혐오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후 100년 동안 금화와 은화만 고집했고, 이 때문에 산업혁명에서 영국한테 크게 뒤처지게 됩니다.

그리고 미시시피, 즉 루이지애나는 어떻게 됐을까요? 프랑스인들은 이 땅을 "사기극의 무대였던 재수 없는 땅"으로 여겼어요. 결국 1803년 나폴레옹이 미국 면적의 23%에 해당하는 이 광활한 땅을 미국에 헐값에 팔아치웠습니다.

 

 

7.3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혹시 요즘 일이 떠오르지 않으셨나요?

"미시시피 개발"은 당시의 최첨단 기술이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인공지능, 메타버스, 블록체인 같은 거죠.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흥분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래서 실제로 돈은 어떻게 버는데?"라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역사상 모든 버블 붕괴 직전에 사람들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

존 로도 그렇게 말했어요. 튤립 투기 때도, 닷컴 버블 때도,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모두가 그렇게 말했죠. 하지만 결과는 늘 똑같았습니다.

300년 전 파리 거리를 휩쓸었던 그 광기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조금 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투자 바구니에는 진짜 가치가 담겨 있나요, 아니면 누군가 가치가 있다고 우기는 환상이 담겨 있나요?

미시시피 거품 사건은 300년 전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간의 탐욕과 공포는 변하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패턴도 놀라울 만큼 비슷하거든요. 오늘도 현명한 투자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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