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요호사건2 친일파 1호 김인승 — 불평등 강화도 조약을 앞장 선 조선인 오늘은 ‘친일파’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 가장 먼저 조국을 배신한 인물 — ‘친일파 1호’ 김인승(金麟昇)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이완용보다 수십 년 앞서, 조선이 식민지가 되기도 전에 일본의 손을 들어준 사람.그의 이름은 김인승이었습니다. 1. 조국이 버린 인재함경북도 경흥 출신의 김인승은 16세에 관직에 오를 정도로 총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조선은 이미 부패로 썩어 있었습니다. 세도정치와 뇌물, 줄 세우기… 능력보다 돈과 혈연이 중요했던 시대.이 젊은 관리는 결국 상사와의 불화 끝에 조국을 떠나 러시아로 망명합니다.그의 첫 번째 배신은 일본이 아닌 조국을 향한 것이었습니다.그의 마음속에는 ‘이 썩은 나라에 내 재능은 낭비된다’는 분노가 자리했죠.이후 그는 러시아의 니콜리스크에.. 2025. 10. 18. 조선은 조약이 뭔지도 모르면서 일본과 불평등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였다. 강화도 조약의 정식 명칭은 조일수호조규이지만 일반적으로 강화도 조약으로 많이 불리고 있습니다. 이 조약은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 국제법 토대로 일본과 체결한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그러나 강화도 조약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시작한 첫걸음이기도 하였습니다.그럼 강화도 조약을 하게된 배경과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당시 조선과 일본은 ~쇄국정책을 강행하였던 흥성대원군은 고종이 어린다는 이유로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으나 어느새 고종도 성인이 되어 직접 다스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스스로 물러나려고 하지 않자 고종은 반 강제적으로 흥선대원군을 물러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조선을 개방하여야 한다는 개화파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고 고종도 개화에 대해 관심을 보이.. 2025. 3. 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