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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역사

동아일보 100년의 역사, 일장기 말소부터 백지광고까지

by 5914 2026.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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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창간한 동아일보는 100년 넘게 한국 사회의 변화를 기록해 왔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검열과 폐간, 군사정권의 언론 탄압, 시민들이 채운 백지광고까지, 동아일보는 한국 근대현대사의 굴곡을 담아냈습니다. 동아일보의 발자취를 돌아보려 합니다.

1. 일제강점기에 탄생한 신문, 민중에게 다가가다.

3.1 운동 이후 일제는 이른바 "문화톤치"를 내세우며 우리말 민간 신문의 발행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신문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총독부는 기사 내용을 검열하는 과정에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지면은 압수하거나 발행을 중단시켰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1920년 4월 1일, 김성수 등을 중심으로 동아일보가 창간되었습니다.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를 내세웠지만. 창간 초기부터 정간과 압수를 겪어야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소식을 전달하는 일을 넘어 교육과 문화 운동에도 참여하였습니다. 대표적인 활동이 1931년부터 펼친 브나로드 운동입니다, "민중 속으로"라는 뜻처럼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농촌으로 내려가 한글을 가르치고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전했습니다.

당시에는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한글을 가르치는 일은 사람들이 신문과 책을 읽고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농촌 계몽의 분위기는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공모에 당선된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도 담겨 있습니다.

출처; 동아일보

2. 손기중의 일장기를 지우다......그리고 폐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선수였던 그는 일본 대표로 출전해야 했고, 시상대에서도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서야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1936년 8월 25일자에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실었습니다. 이것이 "일장기 말소 사건"입니다. 총독부는 관련 언론인들을 탄압하고, 8월 29일 동아일보에 무기정간 처분을 내려버렸습니다. 동아일보는 약 10개월이 지난 1937년 6월에야 다시 발행일 할 수 있었습니다.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앞서 게재했던 조선중앙일보 역시 탄압을 받았고, 결국 발행을 재개하지 못했습니다. 조선 선수의 가슴에 국기를 지운 행동조차 식민 통치 아래에서는 신문의 존립을 위협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일제가 전쟁 동원과 통제를 강화하면서 언론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습니다. 결국 1940년 8월,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와 함께 강제 폐간되었습니다. 다만 이 시기의 역사를 항일 활동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일제 말기 전쟁 협력 기사와 논조 역시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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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방후 복간, 라디오로 넓어진 목소리

동아일보는 해방 후인 1945년 12월 복간했습니다. 그러나 이념 대립과 분단, 6.25 전쟁이 이어지며 신문 제작은 다시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후에는 독재와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4.19 혁명 당시 시민들의 저항을 전했습니다.

1963년 4월 25일에는 라디어 방송국 동아방송(DBS)을 개국했습니다. 종이에 인쇄된 글로 독자를 만나던 신문사가 이제는 목소리와 음악으로 청취자에게 다가간 것입니다.

가끔 연류이 있는 배우들이 과거의 얘기를 할 때 동아방송의 성우로 시작했다는 사연들을 얘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 당시 동아방송은 라디오로 뉴스를 듣는 매체이면서 가족의 일상고 청녀들의 밤을 채워 주는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출처; 시사오늘

4. 권력이 비운 광고면, 시민들이 채우다

유신체제 아래 언론 톤제가 심해지자 동아일보 기자들은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외부의 간섭을 거부하고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해 12월, 중앙정보부의 압력으로 광고주들이 광고를 취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광고 수입을 끊어 신문사를 압박한 것입니다. 지면 곳곳에 빈칸이 생겼고, 이것이 "백지광고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시민들이 움직였습니다. 학생과 노동자, 주부와 자영업자들이 돈을 모아 작은 격려 광고를 실었습니다. 권력의 압력으로 비어 버린 자리가 언론의 자유를 응원하는 문장으로 채워져 버렸습니다. 백지광고는 언론을 지키는 일이 기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력또한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1975년 3월 경영진과 언론인들은 해고했고, 3월 17일 농성하던 이들이 사옥에서 강제로 쫓겨났습니다. 이 과저에서 130여 명이 해직되고 말았습니다.

해직된 언론인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이른바 "동아투위:를 결성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훗날 1988년 한겨레 창간에도 참여했습니다.  당시의 언론의 경영진의 무엇을 하였는지도 한번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1980년에는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동아방송이 KBS에 흡수되면서, 개국 17년 만에 방송을 마쳤습니다.

 

동아일보 사옥

 

5, 종합 미디어로의 변화. 함께 돌아봐야 할  명암 

동아일보는 1993년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했고, 1998년에는 전면 가로쓰기를 도입했습니다. 독자의 생활 방식과 읽기 환경에 맞춰 지면도 달라졌습니다.

2011년 12월에는 종합편성채널 채널A가 개국하면서 동아일보 계열의 방송 사업이 다시 확대되었습니다. 과거 동아방송의 복원은 아니지만. 신문 중심에서 방송과 디지털을 아우르는 변화였습니다. 1926년 지어진 옛 사옥은 일인미술관으로 활용하여 시민들의 문화공간이 되었습니다.

동아일보가 창간부터 지금까지 국민의 알 권리을 위해 기사를 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긴 역사만큼 그들은 그 시대의 권력과도 타협을 봤을 것입니다. 

 그래도 동아일보 100년의 역사는 신문사의 생존기록이면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함께 생각하게 하는 기록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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