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창간한 동아일보는 100년 넘게 한국 사회의 변화를 기록해 왔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검열과 폐간, 군사정권의 언론 탄압, 시민들이 채운 백지광고까지, 동아일보는 한국 근대현대사의 굴곡을 담아냈습니다. 동아일보의 발자취를 돌아보려 합니다.

1. 일제강점기에 탄생한 신문, 민중에게 다가가다.
3.1 운동 이후 일제는 이른바 "문화톤치"를 내세우며 우리말 민간 신문의 발행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신문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총독부는 기사 내용을 검열하는 과정에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지면은 압수하거나 발행을 중단시켰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1920년 4월 1일, 김성수 등을 중심으로 동아일보가 창간되었습니다.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를 내세웠지만. 창간 초기부터 정간과 압수를 겪어야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소식을 전달하는 일을 넘어 교육과 문화 운동에도 참여하였습니다. 대표적인 활동이 1931년부터 펼친 브나로드 운동입니다, "민중 속으로"라는 뜻처럼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농촌으로 내려가 한글을 가르치고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전했습니다.
당시에는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한글을 가르치는 일은 사람들이 신문과 책을 읽고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농촌 계몽의 분위기는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공모에 당선된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도 담겨 있습니다.


2. 손기중의 일장기를 지우다......그리고 폐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선수였던 그는 일본 대표로 출전해야 했고, 시상대에서도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서야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1936년 8월 25일자에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실었습니다. 이것이 "일장기 말소 사건"입니다. 총독부는 관련 언론인들을 탄압하고, 8월 29일 동아일보에 무기정간 처분을 내려버렸습니다. 동아일보는 약 10개월이 지난 1937년 6월에야 다시 발행일 할 수 있었습니다.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앞서 게재했던 조선중앙일보 역시 탄압을 받았고, 결국 발행을 재개하지 못했습니다. 조선 선수의 가슴에 국기를 지운 행동조차 식민 통치 아래에서는 신문의 존립을 위협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일제가 전쟁 동원과 통제를 강화하면서 언론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습니다. 결국 1940년 8월,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와 함께 강제 폐간되었습니다. 다만 이 시기의 역사를 항일 활동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일제 말기 전쟁 협력 기사와 논조 역시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