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의료보험의 출발 - 박정희시대 모두의 반대를 뚫고 만든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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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역사

한국 의료보험의 출발 - 박정희시대 모두의 반대를 뚫고 만든 제도

by 5914 2026.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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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병원에 가면 건강보험을 너무나 당연하게 이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보험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법이 제정된 뒤 실제 시행되기까지 14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정부 내부의 반대와 의료계의 반발, 재정 부담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합니다.  

의료보험의 시작은 박정희 때 부터라는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볼려고 합니다.

1. 의료보험 준비는 이승만 정부 때 시작됐다

한국에서 의료보험 도입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이승만 정부 말기였습니다. 1959년 10월 보건사회부에 건강보험제도 도입을 연구하기 위한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연구 수준에 머물렀고 실제 법률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본격적인 움직임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시작됩니다.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있던 1962년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정부는 의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 법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963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사회보장 관련 법률이 만들어졌고, 같은 해 12월 16일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의료보험법이 제정됐습니다.

따라서 의료보험 연구 자체는 이승만 정부 때 시작됐지만, 실제 의료보험법을 제정한 것은 박정희가 이끌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시기였습니다.

2. 법은 만들었지만 강제로 시행하지 못했다

1963년 의료보험법 초안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을 의무적으로 가입시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재건최고회의 내부에서도 반대가 컸습니다.

당시 한국은 경제 수준이 매우 낮았고 기업의 부담도 컸습니다. 정부 안에서는 "지금 의료보험을 시행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결국 의료보험법은 만들어졌지만 강제가입 조항은 빠졌습니다. 원하는 사람이나 사업장만 가입할 수 있는 임의가입 방식이었습니다.

문제는 건강한 사람들은 가입하지 않고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주로 가입하면서 보험 재정이 어려워졌다는 점입니다. 의료보험조합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1970년 법 개정도 시도됐지만 강제가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됐고, 시행령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면서 의료보험은 다시 사실상 멈춰 서게 됩니다.

 

3. 정부가 망설이던 사이 민간이 가능성을 보여줬다

정부의 의료보험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던 시절, 민간에서는 의료보험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도 나타났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부산의 청십자의료보험조합입니다.

1968년 장기려 박사와 지역 인사들이 만든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은 주민들이 일정한 보험료를 내고 필요할 때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운영됐습니다.

다른 임의가입형 의료보험조합들이 재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상황에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은 비교적 오랫동안 운영되면서 의료보험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4. 1976년, 정부 안에서 다시 충돌한 의료보험

의료보험이 다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70년대 중반입니다.

1975년 신현확이 보건사회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정부는 의료보험 시행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경제부처에서는 다시 반대가 나왔습니다.

1970년대 중반은 오일쇼크의 충격이 남아 있던 시기였습니다. 경제 관료들은 의료보험을 시행하면 기업과 국민의 부담이 커지고 국가 재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특히 경제기획원 등은 국민소득이 더 높아진 뒤 시행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보건사회부는 병원비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며 의료보험 시행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박정희가 의료보험 시행을 결정하면서 논쟁은 마무리됩니다.

1976년 12월 의료보험법이 전면 개정됐고,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을 의무가입 대상으로 하는 강제 의료보험 제도가 마련됐습니다.

5. 북한과의 체제 경쟁도 영향을 미쳤다

박정희 정부가 의료보험을 추진한 배경에는 국민 의료비 문제뿐 아니라 당시 남북 체제 경쟁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북한은 일찍부터 무상 의료 제도를 체제의 장점으로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 간 접촉이 늘어나면서 남한 정부도 국민 복지 문제를 더 의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국가가 국민의 의료 문제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북한과의 경쟁 하나만으로 의료보험이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의료비 부담이 커진 현실적인 문제도 중요한 배경이었습니다.

6. 마침내 시작된 1977년 의료보험

오랜 논란 끝에 1977년 7월 1일,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직장의료보험이 본격적으로 시행됩니다.

1963년 의료보험법이 만들어진 지 무려 14년 만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경제적으로 어려워 보험료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의료보호제도도 시행되면서 보험과 공공부조가 함께 운영되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의료계와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정부가 정한 의료보험 진료수가가 기존 병원 진료비보다 낮았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은 진료수가가 너무 낮다며 반발했지만 의료보험 시행 자체는 진행됐습니다.

이후 1979년에는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까지 의료보험 대상에 포함됐고, 직장의료보험 적용 사업장도 500인 이상에서 300인 이상으로 확대됐습니다.

 

 

전 국민 의료보험은 박정희 이후 완성됐다

박정희 정부에서 의료보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당시에는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농어촌 주민과 도시 자영업자 등은 여전히 의료보험 밖에 있었습니다.

전 국민 의료보험은 이후 적용 범위를 계속 확대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1988년 농어촌 주민이 의료보험에 포함됐고, 1989년에는 도시 자영업자까지 가입하면서 마침내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열렸습니다.

따라서 박정희 정부를 한국 건강보험을 완성한 정부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1963년 의료보험법을 만들고, 1977년 강제 직장의료보험을 실제로 시행하면서 오늘날 건강보험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라고 평가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맺으며

한국 의료보험의 출발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정부 내부에서는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계속 "시기상조"라는 반대가 나왔고, 기업에는 보험료 부담이 생겼으며 의료계는 낮은 진료수가에 반발했습니다.

그럼에도 1977년 의료보험은 실제 제도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가입 대상이 농어촌과 도시 주민으로 확대되고, 수많은 의료보험조합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오늘날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발전했습니다.

박정희시대가 현재의 의료보험을 완성한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시대 의료보험을 실행을 했기에 오늘날  우리는  아프면 돈 걱정없이 병원에 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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