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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역사

세운상가는 왜 흉물이라고 불리울까

by 5914 2026.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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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는 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공간입니다.
중학생이던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마이마이를 사러 갔던 곳이 바로 세운상가였습니다.
유리 진열장 앞에서 괜히 마음이 부풀고,
세상이 조금은 더 넓어 보이던 장소였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애플 태블릿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을 느낀다면,
그 시절 저에게 세운상가는 딱 그런 공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세운상가를 두고 ‘흉물’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이곳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다시 한 번 알고 싶어졌습니다.

1. 세운상가의 땅 원래 계획된 공터였다

세운상가가 자리한 곳은 원래부터 상업지로 계획된 땅이 아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이 일대는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해 비워두기로 한 공터였습니다.
도시의 안전을 위해 일부러 비워두는 공간,
즉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자리’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서울의 인구 밀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상황은 달라집니다.
6·25전쟁 이후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 공터에는 자연스럽게 무허가 집단촌이 형성됩니다.
당시 서울은 종로를 중심으로 상업과 행정이 발달하던 시기였고,
강남이나 오늘날의 부촌들은 아직 형성되지도 않았던 때였습니다.
도심 인근에 주거지가 필요했던 시대적 배경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2.불도저’ 김현옥과 세운상가의 출발

1960년대, 서울시장으로 취임한 김현옥은
이 지역을 서울의 새로운 상징 공간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의 별명이 ‘불도저’였다는 사실은,
이 사업이 얼마나 빠르고 강력하게 추진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김현옥 시장은 세운상가 일대를
당시 기준에서의 부촌형 주상복합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 뜻을 받아 설계를 맡은 인물이 바로 건축가 김수근이었습니다.
김수근은 세운상가를
하나의 거대한 메가스트럭처로 구상합니다.
1층에는 자동차가 다니고,
3층에는 사람이 걷는 공중보행로를 둔 입체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가는 충분한 자본을 갖고 있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그의 구상은 축소되고 변형된 형태로 완공됩니다.
세운상가는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현실화된 건축물이었습니다.

김수근건축가 만들고 싶었던 세운상가

 

3.주거지로서의 실패, 그리고 전자상가로의 변신

세운상가가 완공되었을 당시에는
강남 개발이 시작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도심 주상복합으로서의 매력은 충분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부유층이 이곳에 입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고,
서울 곳곳에 새로운 부촌이 형성되면서
세운상가의 주거지로서의 목적은 점차 실패하게 됩니다.
이곳에 살던 부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합니다.
그럼에도 세운상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서울 중심에 위치한 상가였고,
1층부터 3층까지 상업 공간이 촘촘히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이 본격적인 경제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이 공간은 자연스럽게 전자제품의 메카로 변모합니다.

4.50~60대의 놀이터였던 세운상가

이 시기 세운상가는
지금의 50~60대 세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됩니다.
마이마이, 워크맨, 컴퓨터 조립 부품, 각종 전자제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세운상가였던 시절입니다.
이 때 부품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뭐든지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상가가 아니라
기술과 호기심이 가득한 놀이터였습니다.
그러나 이 명성 역시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용산에 대규모 전자상가가 생기면서
세운상가는 다시 중심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놀이터는 옮겨갔고,
세운상가는 점점 과거의 공간이 되어 갑니다.

 

5.‘흉물’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이유

세운상가가 흉물이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사실 전자상가로 기능하던 시기보다 그 이전이었습니다.
주거 기능이 약화되면서
사람들은 이 공간의 쓸모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전자상가로서의 역할이 그 의문을 잠시 덮어주었을 뿐입니다.
전자상가의 명성마저 사라지자
세운상가는 다시 냉정한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이때부터 역사적 가치냐, 현실적 철거냐의 논쟁이 본격화됩니다.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세운상가의 운명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6.보존과 철거 사이에서 흔들리는 세운상가

오세훈 시장은 철거를 주장하며 계획을 세웠지만,
중도 사퇴로 실제 착수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후 시장이 된 박원순은
세운상가를 보존하기 위한 방향을 택합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보행 다리를 만들어
사람의 흐름을 살리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도 역시
성공했다고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세훈 시장이 취임하면서
정책 방향은 또다시 철거 쪽으로 돌아섭니다.
현재는 세운상가를 없애고
녹지 공원과 주변 고층 빌딩을 조성하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7.그래서 남는 질문

세운상가는 분명 목적에 실패한 건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 시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주거지, 전자상가, 기술의 집적지로서
각 시대마다 다른 쓸모를 가졌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질문이 남습니다.
지금 세운상가를 흉물이라 부르며 없애려는 선택이
과연 미래에는 어떻게 평가받게 될지,
그리고 지금 새로 세우려는 계획 역시
언젠가는 같은 질문을 받게 되지는 않을지 말입니다.
세운상가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서울이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선택하는 방식 그 자체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세운상가 태어나는건 아닐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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