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왕후는 태종 이방원의 부인이자 세종대왕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남편 이방원이 왕이 되는 과정의 큰 역할을 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그녀의 비극이었습니다

1. 그들의 만남
태종의 정비 원경왕후 민 씨는 권문세족 여흥 민 씨에 여흥부원군 민제의 딸로 1365년에 여흥에서 태어났습니다.
원경왕후 민씨의 친정은 고려 최고의 명문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 민제는 성균관에서 사성을 지내며 제자를 양성하였습니다. 민제는 성균관에서 어린 이방원의 총명함을 눈여겨보고 서는 자신 아끼는 딸 민 씨와 혼례를 올리게 합니다.
민 씨는 외모와 총명함을 두루 갖춘 여인이었습니다.
이방원은 민 씨의 처럼 명문 집안은 아니지만 당시 아버지인 이성계의 활약으로 무인집안인데도 불구하고 신흥세력으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려의 풍습에 따라 민 씨 일가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민 씨와 이방원의 사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방원 17세 어린 나이에 과거급제를 하여 장인어른 민제의 자랑이었으며 아버지 이성계의 자식 중에 유일하게 문과 급제을 한 총명한 아들이었습니다.

2. 이방원 왕이 되다.
1388년 민 씨의 시아버지인 이성계가 요동 정벌에 나서다가 개경으로 회군을 하여 고려의 왕 우왕을 폐위시키고 정권을 장악을 하였습니다. 이 여세를 몰아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 조선을 1392년에 건국하게 되었습니다. 조선 건국에는 민 씨의 친정과 남편 이방원의 공도 많이 컸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이성계는 남편 이방원을 배척하고 두번째 부인 사이에서 얻은 어린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을 하였습니다.
이성계는 다 큰 아들들보다 정도전과 두번째 부인 강 씨에게 힘들 더 실어주었던 것입니다.
정도전은 불만이 많은 왕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왕자들의 사병들과 무기들을 몰수하였습니다. 이것을 사병혁파라고 합니다.
민 씨는 훗날을 위해 일부 무기들을 몰래 숨겨놓고 무사 출신이 두 남동생을 통해 무기들을 몰래 빼돌려 모아 두었습니다.
남편 이방원이 정도전을 없애기로 결심을 하자 민씨는 그동안 모아 두었던 무기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민 씨 일가의 적극지원으로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성공하였습니다.
정도전을 죽이고 이복동생 방석을 죽이고 둘째 형 정종이 왕으로 올리고 이방원은 세자가 되었습니다. 민 씨는 도 세자빈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얼마뒤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납니다. 이방원의 형인 이방간이 난을 일으켰는데 차마 형을 칠 수가 없어서 갈등하고 있었는데 민 씨의 과감한 결단으로 2차 왕자의 난을 처리하게 하였습니다.
정종은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뒤로 물러납니다. 1400년 드디어 조선 제3대 왕 이방원 태종이 왕이 되었습니다.

3. 태종 이방원 원경왕후를 외면하다.
원경왕후 민 씨 일가 지원 덕분에 태종이방원은 왕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태종은 왕으로 오른 후 장인어른인 민제에게는 부원군 작위를 내리고 원경왕후 두 남동생에게는 1차 왕자의 난의 공으로 공신을 책봉이 되었습니다. 원경왕후의 일가의 권세는 더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원경왕후는 남편 태종이 좋은 성군이 되도록 뒤에서 힘껏 도울 결심을 하였지만 태종은 왕이 된 후 다른 여인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태종은 왕실의 강화를 위해 후궁을 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연히 원경왕후는 태종의 행동에 잔소리를 하였고 그들의 사이는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변화 태종의 행동은 원경왕후와 민 씨 일가의 외척 세력을 누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태종은 원경왕후가 궁 밖에서 데리고 들어온 시녀까지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사실은 안 원경왕후는 그 시녀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내렸는데 태종이 알게 되었습니다. 태종은 원경왕후의 처소의 시녀와 환관들을 다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 넓은 처소에 아무 도움 없이 혼자 지내는 처지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태종은 어떻게든 원경왕후의 기세를 꺾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 후 태종은 원경왕후 보라듯이 18명의 후궁을 들이고 맙니다.
원경왕후의 심정이 정말로 착잡하였을 것입니다.

4. 비극은 아직 끝나게 아니었다.
원경왕후와 태종사이에는 4남 4녀가 있었습니다. 그중 양녕대군 앞에 연달아 아들 셋을 잃은 뒤 얻은 아들이어서 양녕대군 자체가 이들 부부에게는 귀한 자식이었습니다.
태종이 왕이 되기 전에 양녕대군은 민 씨 일가에 거 키워져 외삼촌들과 많이 친한 편이었습니다.
왕이 된 태종은 대를 이을 양녕대군과 민 씨일가 사람들이 친한것이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양녕대군이 훗 날 왕으로 올랐을때 민씨 일가의 세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아질 것이 뻔했습니다.
태종은 양녕대군이 세자 시절 원경왕후의 두 남동생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상소문이 올라옵니다. 내용인즉 세자 외 왕자들을 없애고 현 세자인 양녕대군을 왕으로 올린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태종은 이 상소문 기반으로 두 민 씨 형제를 역모죄로 몰아갔습니다. 원경왕후는 부모님이 살아 있을 때까지만 살려달라고 태종에게 부탁까지 합니다. 결국 유배로 끝이 났지만 태종은 그들을 살려둘 마음은 없었습니다. 태종은 외척인 민 씨 일가의 권세를 어떻게든 꺾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원경왕후의 부탁대로 아버지 민재가 돌아가신 후 얼마뒤 태종은 제주도 유배지로 보내어서 자결을 명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원경왕후의 친정은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6년 후 나머지 두 남동생들도 죄인으로 몰려 유배지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남편 태종 이방원 손에 원경왕후 친정 민 씨 일가는 정말 몰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원경왕후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저 세상을 지켜만 보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녀가 병들어 시름시름 앓아을 때 그 자리를 지킨 사람은 남편 태종이라고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결국 1420년 그녀는 허망한 세상과 작별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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