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시대에 선조를 비호감의 왕으로 불리는 이유를 써보고자 합니다.
1. 선조가 왕이 된 과정
선조가 왜 이렇게 이기적이고 비호감 왕이 되었는지 조금은 그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그의 출생과 왕이 된 과정부터 알아보려고 합니다. 선조의 가장 큰 약점은 왕가의 사람이었으나 정통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조 그전의 왕인 명종의 후사가 아니었습니다. 선조의 아버지는 중종의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덕흥대원군입니다. 선조는 명종의 먼 친척인 왕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왕이 되었냐면 명종은 아쉽게도 그의 뒤를 이을 아들인 순희 세자는 13세 어린 나이에 죽고 맙니다. 그 후 명종에게 후사가 없어서 명종은 총명한 어린 선조를 차선의 선택으로 자신의 후임으로 지명하고 승하하셨습니다.
선조는 16세의 어린 나이로 1567년에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긴 하나 선조는권력의 힘도 없고 왕의 정통성에 대한 뿌리도 자신에게 없는 조선 최초의 방계의 출신의 왕이 되었습니다. 항상 왕의 자리가 위태로움에 스스로 압박을 받고 살았던 왕으로 그의 머리에는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차지한 왕이었던거 같습니다.
2. 한양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
선조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명나라에 도움을 청하려고 빠르게 북쪽으로 도주해버립니다.
백성들은 선조가 도주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망연자실하였습니다. 일부 백성은 일본군에게 선조가 어느 쪽으로 도망가는지 가르쳐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선조에게 버림받은 백성들의 큰 실망감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역사 학자들은 도망간 선조 정치적 판단이 현명한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누구보다 정보가 빠른 궁에서 백성들에게 일본군이 쳐들어 온다고 말하고 도망 쳐을까요~ 아마 백성에 안정을 챙기고 간다면 그렇게 신속하게 도망가기 어렵다고 봅니다. 아마 선조는 자신이 조선이므로 내가 잡히면 조선이 망한다고 자신만의 이유를 만들어 열심히 도주했을 것입니다.
3. 기회를 놓치다
어쩜 선조는 운이 없는 왕일 수도 있습니다.
조선은 거의 200년 동안 전쟁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간혹 북쪽에서 여진족들이 우리 백성들을 야탈하고 괴롭편지만 전쟁으로 까지 가지 않을 정도로 전쟁에서는 평화로운 조선이었습니다.
몇 명의 유학자들이 전쟁에 대비했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긴 했으나 무시되었습니다. 선조 또한 이때 군사들을 강화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든 전쟁애 대비하고 싶어 했으나 대신들은 군사 강화를 할 필요를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군사가 강화되는 것으로 왕의 힘이 커지는 것이 싫어했는지 군사 강화에 반대하였습니다. 또 일본에 황윤길 , 김성일, 허성 등 통신 사을 보내어 일본의 동태를 파악하도록 했으나 그들의 의견은 달리 하였습니다. 황윤길은 일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야욕이 있는 사람이고 일본의 은 많은 병선을 준비하오니 우리도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고 김성일은 일본이 침입할 조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하였습니다. 선조와 대신들은 황윤길 말보다는 김성일의 말에 더 신뢰하여 방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류성룡을 통해 이순신을 발탁하여 고속 승진을 시켜다는 것입니다,
4. 이순신을 박대하다.
임진왜란 하면 이순신이 바로 나올 정도 온몸을 다해서 싸운 조선의 영웅입니다. 일본의 정보를 모아서 묵묵히 침략대비를 하여 남쪽 바다를 지킨 장군입니다. 그는 모든 전재에 전승을 거두어서 백성의 칭송을 받습니다.
그러나 선조를 이순신의 승정 소식을 듣는 것은 좋으나 백성들이 이순신을 칭송 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시선에는 자신은 전쟁이 무서워 도망가는 임금이고 이순신은 나라를 위해 싸우는 영웅인 것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조는 이순신의 불평한 감정을 가진 상태에서 원균이 이순신을 비방하는 말들을 귀 담아 들은 것 같습니다. 선조는 이순신에게 적의 본진인 부산으로 향하는 가토 기요마사를 잡으라는 어명을 내렸으나 이순신은 거역을 하자 선조는 즉시 이순신을 파직하고 고문하였습니다. 이순신이 명을 거역한 그 해전은 원균 지휘하에 해전이 치루지만 처참하게 패하고 맙니다. 원균에 간사한 언행과 이순신에 대한 선조의 불신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닐까요~
선조는 이순신에게 직감을 내리지는 않고 백의종군으로 다시 복직을 시킵니다. 그 후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으로 큰 업적을 세우나 이순신을 노량해전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선조와의 불화설인지 아니면 가족을 잃은 슬픔인지 몰라도 지금까지 지금까지 이순신이 노량해전 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애기도 나옵니다.
그만큼 선조는 이 순신의 마음을 지치게 한 원인 제공자였을 겁니다.
4. 임진왜란 끝난 후 이상한 공신책봉
임지왜란이 끝난 후 선조는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공신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선조 곁에서 자신을 지킨 사람들 우선으로 책봉을 하였습니다. 선조 왈 임진왜란의 승리는 자신이 얼른 명나라에 도움을 청해서 임지왜란을 승리하였기 때문에 선조를 곁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공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쟁에 직접 참여한 이순신과 권률 등 도 공신에 오르지만 공신에 숫자는 겨우 18명만 책봉이 되고 선조와 함께 피난 간 사람들을 포함해서 무려 86명이 책봉이 됩니다. 여기에 오직 임금과 백성들을 위해 싸운 의병과 승려는 제외됩니다.
선조는 훗날을 대비해서 전쟁 시 도망갈 수도 있고 200년 동안 평화로웠던 조선이 전쟁대비를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큰 업적을 세운 충신들을 찾아 상을 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렇다고 선조가 머리가 나쁜 왕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음의 덕이 많이 부족하여 어떻게든 자신이 이 나라를 구한 거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덕이 많이 부족한 조선의 왕이므로 훗날 비호감의 왕으로 우리에게 평가 받고 있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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