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이 이방원의 조선의 3대 왕으로 아버지 이성계가 건국을 했다면 이방원은 조선의 왕권을 만든 인물입니다. 그러나 고려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로 가기까지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태종은 조선의 왕권을 굳건히 하기위해 방해가 된다고 판단이 되면 그가 누구인듯 상관없이 제거한 인물로 태종이방원의 칼날에 희생된 사람들을 정리했습니다.

. 1. 고려의 마지막 보루, 포은 정몽주
포은 정몽주는 고려 말 성리학의 대가로 처음에는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과 함께 부패한 고려를 바꾸려고 서로 함께 한적이 있습니다. 특히 이성계는 정몽주에 대한 존경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몽주와 이성계와 함께 부패한 고려를 개혁하려는 것은 맞지만 '역성혁명(왕씨를 몰아내고 이씨가 왕이 되는 것)'에는 단호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들의 가는 길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정몽주는 현재의 고려의 왕을 유지하면서 개척을 하려고 했고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고 했으니 서로 목표는 같았지만 길이 달라 결국 적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이런 갈등 가운데서 이성계가 낙마 사고로 사경을 헤매자, 정몽주는 이 기회에 이방원 일파를 역적으로 몰아 뿌리 뽑으려고 했습니다. 이때 이방원도 정몽주을 제거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습니다.거대한 도덕적 상징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조선 건국이 불가능함을 직감했습니다.
죽음순간: "철퇴 아래 쓰러진 충절"
이방원은 1392년 4월, 정몽주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한번 회유를 시도를 해새보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방원은 조영규를 보내어 . 정몽주도 이방원의 집을 나오며서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을 지도 모릅니다. 개성 선죽교 위에서 조영규가 휘두른 철퇴에 머리를 맞은 정몽주는 말에서 떨어졌고, 자객들의 칼날에 처참히 살해되었습니다. 그가 흘린 피는 고려의 475년 역사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되었습니다.

2. 조선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
조선의 개국 공신 1등으로 조선의 모든 시스템을 설계한 핵심 인물입니다. 그도 고려말 성리학 학자로 이성계와 함께 새로운 나라를 만들 결심을 하였습니다. 정도전는 고려라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정도전은 이성계의 중심으로 조선을 만들었고 이성계와 함께 정도전이 원하는 조선의 시스템을 구축을 하려는 입장에서 이방원은 방해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이성계는 무인으로 학문이 정도전 만큼 깊지않아 이성계를 얼마든지 설득이 가능하지만 이방원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이 건립이 시작되면서 정도전과 이성계는 이방원을 비롯한 첫번째 부인에서 낳은 아들들을 멀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도전의 생각은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로 두고, 현명한 재상이 나라를 다스리는 '신권 정치' 였습니다. 그러려면 왕자들이 이끌고 있는 사병들을 혁파를 해야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방원은 더이상 정도전을 내버려 둘 수없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사병혁파로 무기를 다빼아깃 왕자들이 었지만 이방원의 부인이 훗날 원경왕후가 무기를 몰래 빼돌리는 바람에 사병들을 다시 모아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의 순간: "술자리에서 맞이한 허망한 최후"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밤, 정도전은 남은의 첩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기습한 이방원의 군사들이 불을 지르자 정도전은 근처 노비의 집으로 숨었으나 결국 끌려 나왔습니다. 정도전은 옛 정을 생각해서 살려달라고 구걸했다고 전해지나(태종실록 기록), 이방원은 "네가 이미 왕실을 배반하려 했다"며 목을 베어 길거리에 버리게 했습니다

3. 비운의 세자, 이복동생 이방석
이성계에게는 두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첫번째 부인은 조선의 건국되기전에 세상을 떠나 두번째 부인인 신덕왕후가 중전에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방원의 형제들은 조선의 건립이 되면 당연히 후계자는 그들 사이에서 나올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성계 신덕왕후 그리고 정도전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막내아들 이방석이었습니다. 세자로 책봉된 나이는 10세였습니다, 이성계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 자식을 후계자로 만들고 싶고 또 신변의 안정도 보장이 되는 것이고 정도전은 나이가 어려야 자신의 원하는 조선의 왕으로 만들 수 있을거기 때문일거라고 아마도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외 아들들이 그들의 계획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왕자들은 수많은 고생을 해 조선을 건국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는데 결국 돌아온것은 외면 뿐이고 또한 나라가 정도전에 휘말리는 것을 계속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으로 앞서 내용과 같이 왕자의 난을 일으킵니다.
죽음의 순간: "궁문 밖으로 끌앋르려 나간 어린 동생"왕자의 난이 승리로 끝나자, 이방원은 세자 방석을 폐위시키고 궁 밖으로 내보냅니다. 방석이 서소문 밖으로 나섰을 때, 기다리고 있던 이방원의 심복들이 그를 덮쳤습니다. 죽기 직전 방석은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으나, 이방원의 명령을 받은 자객들은 자비 없이 그를 살해했습니다. 이로써 이성계와 이방원의 부자 관계는 완전히 파탄 납니다, 신덕왕후는 왕자의 난 사건 이전에 이미 병사로 사망을 했습니다.
4. 권력의 2인자를 꿈꾼 처남들, 민씨 형제 (민무구·민무질)
이방원 태종의 왕으로 까지 오는데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은 부인인 원경왕후입니다. 그녀와 그의 집안의 이방원의 큰 버팀목이었습니다. 허나 그것은 왕이 오르는 과정에서의 애기지 왕에 오르면 외척은 이방원에게 불편한 존재가되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원경왕후의 남동생들인 민무구 ,민무질이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외척이 권력을 잡으면 왕실이 허수아비가 될 수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왕권에 방해가 되는 존재였습니다, 거기에 태종의 큰아들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은 민씨 가문에서 자랐습니다. 당연씨 민씨 형제들과의 사이도 좋은편있었습니다. 태종은 이들 사이가 좋은 것을 경계하여 그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양녕대군에세 양위(왕위를 물려줌) 를 명하였습니다.다른 대신들은 제빠른게 반대를 하였고 양녕대군도 명을 거두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허나 민씨형제들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태종은 민씨 형제의 태도를 빌미 삼아 그들은 '공신'이 아니라 '잠재적 역적' 몰아 귀향을 보내버렸습니다. 아마도 태종은 어떻게든 민씨형제와 양녕대군을 떨어뜨려 놓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의 순간: "끈질긴 압박과 고립된 자결"
태종은 이들을 단칼에 죽이지 않고 수년에 걸쳐 유배와 사헌부 탄핵을 반복하며 서서히 목을 조였습니다. 결국 1410년,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는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합니다. 이후 남은 두 동생(민무휼·민무회)습지 숙청하며 태종은 아내의 가문을 완전히 멸문시켰습니다.

5. 세종의 장인, 영의정 심온
심온은 세종대왕의 장인으로 당대 최고의 인망과 세력을 지닌 권력 실세 였습니다. 이방원에게 있어 심온은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이(세종대왕) 세자로 오르기 전에 애기입니다
말썽이 끝없이 일으킨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을 이방원은 결국 폐위 시키고 맙니다. 그리고 똑똑한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을 합니다. 충녕대군을 책봉을 하니 태종이방원은 근심이 또하나가 생기게 된것입니다. 바로 충녕대군에 외척이었습니다. '
사람들이 세자의 장인인 심온에게 몰려가 그의 영향력을 크게 키워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심온이 명나라 사신으로 가야 할 일이있었습니다. 그런데 명나라로 가는 심온을 전송하는 인파들이 인산인해를 몰리는 것을 보고 태종은 세종이 성군이 되려면 장인의 그늘이 없어야 한다."죽일 결심을 합니다
심온 자체의 죄보다 그의 '세력'이 죄였습니다.
죽음의 순간: "사위의 나라에서 반역자가 되다"
명나라에서 돌아오던 심온은 의주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습니다. 태종은 심온의 동생들이 군사권을 논했다는 억지 명분을 씌워 모진 고문을 가했습니다. 결국 심온은 수원에서 사약을 받았습니다. 그는 죽기 전 **"심씨 가문은 이씨 가문과 혼인하지 마라"**는 피맺힌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방원이 죽인 이들은 그의 스승이자 형제 그리고 한집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 그에게 있어 조선의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라는 대의를 우선이었던거 같습니다.
그는 정몽주를 통해 건국을, 정도전과 방석을 통해 권력을, 민씨와 심온을 통해 후계자의 안정을 꾀한 것입니다. 이 잔혹한 숙청의 결과로 아들 세종대왕은 신하들의 견제 없이 마음껏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여 한글 창제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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