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종 이방원이죽인 주요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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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일제시대

태종 이방원이죽인 주요 인물들

by 5914 2023.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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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건국과정과  조선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태종이방원이 죽인  주요 인물들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조선 3대 왕 태종

태종이방원은 고려말 무예집안인  이성계 첫째 부인 한 씨의 다섯째 아들로 1367년에 태어나서  다른 형제들과 달리  무예보다는 학문을  더 관심이  보였습니다.
이방원은  고려과거에  문과, 병과에  급제하여서  이성계를 크게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아버지 이성계가  쓰러져가는 고려의 회복이 어려움을 깨닫고  개혁추진하는데  이방원이  큰  활량을 합니다.
이성계가  낙마하여 크게  부상당한 사건으로 정몽주가  이성계와 정도전을  없애고자 했는데  이방원이  정몽주를  타살합니다.   정몽주의 타살의 계기로  이성계의 반대파를  몰살하고  조선을  설립하는데  성공을 합니다.
아버지 이성계는  왕으로 계승이 되었으나  이방원이 아닌 이복 동생 막내 방석이 세자로 책봉이 되었습니다.
이에 불만을 갖은 왕자들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방원이  형  이방과를  왕으로 세우고 자신을  세제로  만들어
정권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때  정도전과 이복 동색 방우와 방석을  죽였습니다.
이방원은  왕이 된 뒤  사병혁파, 법령개정, 관제개정, 신문고 설치등   조선설립기초를  성립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이방원은  향략을 좋아하는 첫째  세자를  폐위하고  한문을  좋아하는  셋째 충령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과정에서
 첫째양녕대군을 지지하는 외척인  처남들을  제거합니다.
또한  세종의  외척을 베제 하기 위해서  세종의 장인도  죽였습니다.
이방원은  세종대왕의  정치방해가 우려스러워  공신세력들도  숙청하여  조선왕권 강화 기반과 안정의  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세종에게 왕위를 계승하고  병권만 갖고서는 상왕으로  물러나 뒤에서  세종을  정치를  4여 년 동안  감시하였고  1422년에  조선의 3대 왕 태종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태종이방원이  죽인 사람들은  한때 그와 피를 나누거나  학문을  배우고 존경한  인물들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선건립과 왕건 강화를 위해 아니 그의 목적을 위해 잔혹함을  선택한 그는 그래도 세종대왕을  왕으로 만들고   세종이 정치를   잘할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새 조선을 원치 않았던  정몽주

133년에  경상도 영천에서  태어났으면  고려말에 뛰어난 외교관, 문신, 유학자입니다.
1360년에  문과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로 출사 하여  성균관대사성, 예의판서, 예문관제학, 수원등을  지내며
치명파 신진사대부로  활동하었습니다.
정몽주도 고려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이성계와  손잡고 고려왕 우왕을  공민왕이 아닌 신돈의  아들이 이라는   명분으로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옹립하는데  동참했으나 이성계의  새 조선의 건립을  반대하였습니다.
정몽주는 고려를 멸하지 않고 천천히  나라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인물로 이성 계의  행보를 방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정몽주의 높은 학문  존경하여 회유하려고 하었으나  정뭉주는 오히려 이성계의 큰 부상을  입은 
틈을 기회를  삼아 이성계와 정도전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이방원이  먼저  정몽주를  대낮 선주교에서 무참하게
피살되었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궤멸되었습니다. 이죽음으로  이성계는 조선의 왕이 되었습니다.
사후 이방원은 왕으로 즉위 원년에 정몽주를 영의정으로 추중하고 익양부원군으로 봉햐였습니다.
오늘날 고려의 충신이냐 아니다는 논란을  갖고 있는 인물이지만  성리학자로서  뛰어난 학문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새 조선의 기반을 세운 정도전 

정도전은 1342년에  경상북도 영조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려시대에 과거급제 후 성균관 등에 있었으며 성리학을 장려하는 인물로 불교를  고려 부패의 원산지라고 생각하여
불교를 멀리하고 그 자리에 유교사상을  세우고자 한 인물입니다.
고려권세력과  명나라의 외교에 불만에 고려조정과 마찰이 많은 정도전은  개혁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성계와
함께  개혁의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어려움 끝에  이방원과 함께  이성계를  새 조선의 왕으로  올려놓지만 세자 책봉 하는 과정에서  이방원이 아니  이성계의
막내아들 이방석을 추대하면서 이방원과  사이는  극적으로 안 좋아졌습니다.
또한 이성계가  이방원 보다 정도전을 더 신임하여  그의  권세은 이방원 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이성계는 새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는 일을 정도전에게  명하였습니다
정도전은  유교 사상 기반으로 경복궁, 종묘, 사직등을  중심으로 한양을  설계하였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이 갖추어야 하는 조세제도, 법률제도, 만들었으며 불교를 멀리하고 유교를 나라의 통치 이념으로
확립시켰습니다.
정도전은 어린 이방석을  교육시켜서 재상이 중심이 되는 재상정치를 꿈꾸었지만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그의 꿈은 죽음과 같이 사라지고 맙니다.
정도전은 조선의 기초 법과 제도를  잘 설계한 인물이었으나  조선의 왕들에게  죽은 뒤에도  항상 경계대상이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세종의 장인이라는  이유로 역적이 된 심온

 조선의 개국공신과 궁궐, 종묘, 사직등 건설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청송 심씨 가문 심덕부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심온은 고려말에 급제를 하였으나  본격적으로  관직생활은 한 것은 태조 병조이랑,  공조의랑으로 시작하여
중종 때 대호군으로 태종 때 승정언을 거쳐 대사헌까지  임명되었습니다.
사위인 충녕대군이  보위에 오르자  영의정으로 발탁되었습니다.
태종에게는 연흥민 씨와 청송 심 씨 가문은  외척이기전  가문에 권세가 커져서  통제하기  힘든  가문이었습니다.
태종 심온이 어린 세종을 넘고  권력을  키울까 봐 염려하는 와중에 심온이 명나라  사신으로 가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심온을 마중 나오는 사실을  태종이 듣고서는 그는 심온을 사살할 결심을 합니다.
강상인과 심온에 동생 심정이  태종이 병권을  가지고  있음을  불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빌미 삼아 두 사람을  역적으로 체포하고  심문하여
심온도 연루되었음   자백받아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심온을 체포합니다.
심온에게   자백을 받은 뒤 다음날 역좌죄로  바로 사사하고 그의   가족들을  관노로 만들었습니다.
태종은  세종의  부인 소현왕후도 폐위하려 했으나 세종의 간곡한  반대로  소현왕후는 폐위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심온에 복귀는  세종이  아닌  손자 때와서야  복귀되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죽인 인물들은  한때는 학문을  배우는 스승이었고  동료였으며  가족이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조선이 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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