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7년간 수렴청정이 끝나고 20세 나이에 친정을 시작했는데 대신들의 세력이 만만치 않자
성종은 사립파 김종직을 등용하면서 자신의 정치를 펼쳐나갔으며 성종의 업적을 말해 보자 합니다.
1.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성종이 왕이 되다.
성종은 1457년에 태어나서 1494년에 사망하고 조선의 9대 왕으로 재위기간 1469~1494년 까지재 위했습니다.
성종의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의경세자가 20세 나이로 요절하는 바람에 사가에서 지냈으나
삼촌인 8대 왕 예종이 즉위한 지 1년 2개월 만에 사망하였습니다.
예종 사망 즉시 성종이 왕이 되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 13세였습니다.
원래 성종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서열 3위였는데 그가 예종 아들과 형을 제치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종의 장인의 한명회의 힘이 큰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한명회는 사위가 왕이 되어야 자신의 권세을 크게 만들 수 있고 정희왕후나 인수대비는 한명회를 이용해 왕실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어서 성종이 둘째 있데도 왕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2. 수렴청정을 맞히고 성종 20세부터 친정을 시작하다.
성종은 어린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기에 할머니 정희왕후가 7년간 수렴청정을 했는데 이 기간 동안 신숙주, 한명회 등 9명이 실질적으로 국정을 좌우하였습니다.
성종이 20세가 되자 정희왕후는 7년간의 수렴청정을 맞히고 성종이 직접 친정을 할 것을 명하였으나 한명회 반대의 상소를 올렸는데 성종이 " 그럼 날 못 믿는다는 거냐" 며 한명회에게 일침을 가하면서 왕에 기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원로대신들이 국정의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는 원상제도를 폐지하여 성종은 결제권을 되찾아 오면서 친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성종에게 수렴청정 7년의 시간은 왕의 기략을 높이고 배움을 열심히 하여 진정한 왕이 될 준비의 시간이 이었습니다.
3. 김종직을 등용하다.
성종이 친정을 하였으나 그동안 높은 권세를 누린 공신들의 세력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성종에게는 자신의 뜻을 잘 따르고 공신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신진 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성종은 정몽주, 길재의 성리학 사상을 기반으로 전해 내려온 사림파의 수장 김종직을 등용합니다,
성종은 김종직이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뒷받침해줄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종직의 제자 김광필, 정여창, 김일손, 등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을 포진하여 공신세력들의 독주를 저지시켰습니다.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등 언론 3사를 만들어서 공신세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언로를 막지 않았습니다.
성종은 두 세력을 팽팽한 대립 구조를 만들어서 자신의 왕권을 지켜 나갔고. 신하들과 매일같이 경연을 열어서
학식을 배우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4. 중요 서적 편찬
경국대전 : 경국재전은 조선의 기본법 법정으로 세조 때부터 준비하기 시작한 법정입니다.
세조는 산만한 각종 법전들을 총체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법정을 만들기 위해 육전상정소를 설치하여 통일법정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으나 세조는 마무리를 못하고 그의 손자 성종이 완성하여 반포했습니다.
경국대전은 이전 호전 예전 병전 공전 형전등 6개 분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나라의 모든 일을 경국대전을 바탕으로 법을 따르게 했습니다.
동국여지승람: 각도의 지리, 풍속, 인물을 기록한 지리서입니다.
동국통감 : 문신 서거장이 왕명을 받아 단군조선 때부터 고려말까지 역사를 엮은 사서입니다.
금양잡록: 곡물의 품종에 대한 설명을 담은 농서
악학궤범: 악기들을 연주 방법을 적은 음악이론
성종은 조선의 기초를 완성시켰다는 뜻으로 묘호를 얻었을 만큼 개국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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