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폭군의 대명사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등을 일으켜 궁의 피바람을 일으킨 왕입니다 그의 뒤에는 폭정의 불을 지핀 간신들도 있었습니다.
연산군의 만행과 간신들에 대해서 알아 보고자 합니다.
1 연산군
연산군은 1476년에 태어나서 1506년에 사망하였습니다.
연산군은 9대 왕 성종과 폐비 윤씨 사이의 태어난 맏아들로 연산군은 왕이 되기 전까지 폐비 윤 씨의 존재를 모르는 체 성장하게 됩니다.
연산군이 19세 나이에 왕으로 즉위했고 왕으로 오른 초기 4년 동안에는 아버지 성종처럼 평안하게 나라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4동안 연산군은 사립파 관료들과의 마찰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명분과 도의를 중요시하는 관료들은 연산군에게 사사건건 간섭하는가 하면, 끝이 없이 학문의 배움을 강요하였습니다.
학문의 별 뜻이 없는 연산군은 그들을 점점 귀찮게 여기고 마침내 무오사화를 일으켜 사립세력을 축출해 제거하였습니다.
그 후 연산군은 조정을 독점하여 매일 같이 향연을 베풀었고 공포 정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폐비윤 씨 사건을 알게 된 연산군은 갑자사화를 일으켜서 성종의 후궁을 죽이고 페비윤 씨에 관련된 인물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연산군의 폭정이 계속되자 증종반정이 일어나서 연산군은 1506년 폐위되고 맙니다. 강화도에 유배되어 두어 달만에
생을 마감합니다.
2. 유자광
유자광은 1439년의 태어나 1512년에 사망했습니다. 아버지는 양반이나 어머니가 노비출신으로 유자광은 얼자로 신분이어서 조정에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처지었으나 세조 때 이시애 난으로 공을 세워 유자광은 중앙 정계에 진출하게 됩니다. 세조의 이어 예종과 성종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그를 지켜보는 대신들은 낮은 신분의 출신이 탄탄대로 승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대신들은 유자광을 소인배라 하여 그를 상대 조차 해주지 않았습니다.
연산군 때 유자광은 다른 왕들처럼 연산군에게도 잘 보여야 하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대신들을 혼내주고 싶은 마음에
세조를 비방하는 사초를 연산군에게 알립니다.
이 사초로 연산군은 무호사화를 일으키고 유자광은 연산군에게도 총애를 받습았니다.
허나 유자광도 연산군의 갑자사화를 곁으면서 조용히 지냅니다.
그리고 연산군 폐위를 도모하는 중종반정에 합류해서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을 왕으로 옹립하는 데 성공합니다.
유자광은 1등 공신으로 책봉이 되었으나 무오사화등 여러 행실 등 문제가 되어서 결국 파직당하고 유배되고 맙니다.
결국 유자광은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3. 무오사화
무오사화의 출발점은 김일손의 사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성종이 죽은 뒤 조정은 성종의 실록을 기록하기 위해 사초들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실록청 담사관에 역임되었던 이극돈은 사초내용 중 자신을 비방하는 내용이 있어서 김일손에게 지워달라고 요구하지만 김일손은 이극돈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이극돈은 김일손의 사초들을 전부 파헤쳐서 선대왕 세조를 비방한 내용들을 모아 유자광과 의논을 하게 됩니다.
사초의 내용은 의경세자 후궁을 은밀히 불렀지만 후궁이 따르지 않았다는 내용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관을 꺼내 바다에 던졌다는 내용과 단종의 시체를 산에 버렸다는 내용이 있었으며 계유정난을 비난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또 김일손은 자신의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의 내용도 기록했습니다.
조의제문은 중국 초나라의 회왕이라는 왕이 항우 장군에게 죽음을 당하고 왕위를 빼앗기는 이야기를 김종직이 회왕을 추모하는 글이 바로 "조의제문"입니다.
단순한 중국의 왕을 추모한 게 아니라 회왕은 단종이고 항우는 세조이므로 김종직은 단종을 추모하고 세조를 비난하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들이 들어 있는 사초들을 유자광은 해석까지 써서 연산군에게 올립니다.
연산군은 세조를 능멸하였다는 죄로 김일손과 사립파 대신들을 모조리 잡아 극형에 처하고 이미 죽은 김종직은 무덤을 파헤쳐서 부관참사를 시킵니다.
연산군은 사사건건 대립하는 사립출신 대간들을 무오사화로 확실히 눌러 버립니다.
그러나 연산군은 무오사화 이후 매일같이 향연을 베풀고 기생을 궁으로 들이고 여염짐 아낙을 겁탈등 그의 폭정의 서막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4. 간신 임사홍과 그의 아들 임숭재
임사홍은 1445년에 태어나 1506년 증종반정 때 사망하였습니다.
세조 때 급제하여 관료 생활을 시작했으며 뛰어난 인재로써 외국어에도 능통하여 외교업무도 같이 보았습니다.
임사홍은 직설적인 성격으로 타인에 대한 비판을 자주 했으므로 대신들의 눈엣 가시였습니다.
그러나 성종의 총애와 왕실의 사돈 간이어서 함부로 못했으나 연산군 어머니 윤 씨 폐위를 반대하면서 성종의 눈밖에 났고 대신들은 현석규를 음해했는 죄목을 만들어 탄핵을 촉구하여 결국 유배시켜버립니다.
성종이 죽고 연산군이 즉위한 뒤 아들 임숭재의 도움으로 복직하게 됩니다.
임사홍은 갑자사화 원인인 폐비 윤 씨 유품을 연산군에게 건네준 인물이 이며 연산군에게 여인을 받치는 채홍사에 임명됩니다. 연산군의 여자를 모집한다는 명분하에 많은 악행을 했으며 결국은 증종반정 때 자택에서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다.
이후 중종은 임사홍을 부관참사를 명합니다.
임숭재는 태어난 시기는 미상으로 1505년 증종반정 1년 전에 사망합니다.
임사홍의 넷째 아들로 성종의 딸 휘숙옹주의 남편이었습니다.
휘숙옹주는 연산군이 이뻐하는 이복동생으로 임숭재와도 가까이 지냈습니다. 임숭재는 가무에 능한 재주로 연산군에게 온갖 비위를 맞추어줘서 연산군의 신임을 받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채홍사의 책임자가 되어서 전국 미인들을 모으는데 기생은 물론이고 보통가정집의 부인, 양반집 첩까지 연산군에게 받치는 만행을 일삼아 백성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여동생과 부인도 연산군에게 받쳤다는 애기가 나올 정도로 임숭재는 연산군의 여인을 받치는 일은 정말로 진심으로 다하였습니다. 중종반정 1년 전에 그는 사망하는데 마지막 말이 연산군에 더 많은 미인을 보여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하고 죽었다는 애기도 있습니다. 임숭재도 중종반정 이후 아버지와 같이 부관참사 당하였습니다.
5. 갑자사화
갑자사화는 무오사화에 비할 수 없는 연산군의 잔인함이 그대로 나타나는 사건입니다.
갑자사화의 원인이 된 패비윤 씨 사건부터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폐비 윤 씨는 연산군의 어머니며 성종의 두 번째 부인입니다, 폐비윤 씨가 중전 자리에 있을 때 시기와 질투심이 강할 뿐 아니라 심지어 성종과 몸 다툼을 하는 과정에 성종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바람에 폐비가 된 여인입니다.
3년 후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 하여서 사사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연산군은 모르고 자랐으며 나중에 왕위 올라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자세한 내용을 임사홍에게 전해 듣는다, 임사홍은 성종의 후궁과 할머니 인수대비 모함으로 죽음을 당하였다고 하여 연산군은 아버지 후궁들을 때려죽이고 젓갈을 담아 버리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또 할머니인 인수대비를 연산군이 머리로 들이받아서 충격으로 돌아가셨다는 야설도 있습니다.
갑자사화로 인해 윤필상 이극균 이세좌 등 페비 윤 씨를 폐출에 연관이 있는 신하들을 모두 찾아내어 참하였습니다.
연산군의 어릴 때 스승이었던 조지서도 이때 사사합니다. 이미 죽은 한명회는 쇄골표풍이라 하여 무덤에서 유골이 꺼내 그 유골을 가루로 만들어 바람에 뿌려버리는 형벌도 내립니다.
연산군은 폐비 윤 씨의 복수심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절대왕권에 걸림 돌이 되는 훈구세력들을 제거해 버리는 의도가 더 깔려있는 사건입니다.
갑자사화로 인해 200여 명 이상이 죽음을 당하거나 처벌을 당하였습니다.
무오사화는 50여 명이 형벌을 당한 것에 비해 갑자사화는 4배가 넘은 대신들이 연산군 말 한마디에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절대왕권을 가질 수 있어으나 자신의 향락에만 이용했을 뿐입니다.
연산군의 만행은 1506년 성희안 박원종 중심으로 일으킨 증종반정으로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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