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3 고문귀신 친일경찰 노덕술은 이승만 정부에게 단죄가 아닌 훈장을 받았다 조선인을 일본 경찰보다 더 심하게 고문하였던 같은 민족인 악질 친일파 노덕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1. 일본 앞잡이 노덕술그는 1899년 울산 어느 지역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습니다. 그는 울산 보통학교 2하년에 중퇴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그는 상점 같은 데에서 종업원으로 일을 해봤자 별 볼 일 없음을 깨닫고 1918년에 귀국해 일본 경찰이 되기 위해 순사교습소에 들어가 1920년에 일본 말단 경찰이 됩니다.그는 경찰이 된 후 승승장구를 하는데 1921순사부장, 1933년 경부(현, 경감) 1943년 경시로 승진하는데 이 자리에 오른 조선인 중에 21명뿐이며 노덕술을 제외한 조선인들은 좋은 집안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일본인들도 쉽게 오를 수 없는 자리였는데 말단 경찰이 그 자.. 2024. 12. 8. 조선을 싫어 했던 여인 친일파 배정자 친일파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이글에 나오는 여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 들어가 일본을 의해 스파이 노릇을 제대로 한 배정자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 그녀의 성장과정1870년에 경남김해에서 태어난 배정자는 원래 본명은 배분 남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배지홍으로 김해 밀양의 아전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흥선 대원군을 지지한 사람이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며느리인 명성황후와 정권다툼을 했는데 결국 1973년 흥선대원군은 실각을 했고 명성황후의 집안 민 씨 일가의 보복으로 그녀의 아버지 배지홍은 역모죄로 처형을 당하고 그녀의 집안 식구들은 노비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이 충격으로 실명을 해버렸습니.. 2024. 11. 18. 나라를 팔아버린 친일파 윤덕영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친일파 하면 이완용인데 그보다 더 진독했던 부패관리 윤덕영을 잊지 않기 위해 글로 남깁니다.1. 권세의 시작윤덕영은 1873년에 태어나 1894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자리에 오릅니다. 윤덕영의 집안이 좋은 편이라 일본 조사사찰단으로도 임명되기도 하고 돌아와 비서관등으로 일을 했습니다. 거기에 동생인 윤택영 딸인 조카가 순종 부인인 왕후로 책봉이 되기도 합니다. 윤덕영은 빠른 승진과 황후가 조카딸이어서 궁중을 손아귀에 넣게 됩니다. 황후의 아버지 윤태영 보다 윤덕영이 황후를 등에 업고 권세를 누렸습니다. 2. 지독한 일본 앞잡이 우리나라는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을사 늑약을 했습니다. , 그리고 5년 후 1910년한일병합조약이 강제로 쳬결되.. 2024. 11. 1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