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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일제시대46

을사오적 권중현 – 펜 하나로 조선을 넘긴 조용한 매국노 “권중현(權重顯)” — 흔히 ‘을사오적’ 중 하나로 기억되는 이 인물은 단순한 매국노가 아닙니다. 그는 무기를 들지도 않았고, 직접 백성을 탄압한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펜 하나로 나라의 경제를 넘겼고, 구조적인 친일체제를 설계하는 데 조용히, 그러나 깊이 가담한 인물이었습니다.1. 농상공부대신이란? – ‘경제 대통령’에 해당하던 자리권중현은 1905년, 을사늑약 당시 농상공부대신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현대적 의미로 표현하자면 산업부 + 농림부 + 중기부 + 상공회의소 총괄 장관을 모두 합친 수준의 ‘경제 최고 책임자’였습니다.농상공부대신은 다음과 같은 핵심 권한을 가졌습니다:농업 정책 결정 및 농지 관리상업·무역 정책 및 관세 조정공업(수공업 및 초기 근대산업) 진흥과 자원 개발기술 도입, 외국.. 2025. 6. 6.
비운 사도세자와 조선 무예의 보고(寶庫) 『무예도보통지』: 못다 이룬 꿈, 찬란한 유산으로 꽃피우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의 비극적인 왕세자, 사도세자와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인 **『무예도보통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드릴게요. 많은 분이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만을 알고 계시겠지만, 그는 사실 뛰어난 무예가이자 조선 무예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었습니다.1. 비운의 세자, 무예에 심취하다: 미디어 속 이미지와는 다른 진짜 사도세자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왕세자입니다. 그의 삶이 오직 비극으로만 점철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무예와 병법에 남다른 흥미와 재능을 보였습니다. 단순히 무술을 즐기는 것을 넘어, 조선의 국방력 강화에 대한 깊은 고민을 품고 무예 발전에 헌신했던 인물이었죠.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사도세자의 이미지는 흔.. 2025. 6. 5.
함흥차사의 진실과 상상: 돌아오지 못한 사신들과 이성계의 선택 “보낸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우리는 흔히 답장이 없거나, 심부름을 시키고도 아무 소식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바로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고사성어에서 유래한 표현이죠. 그런데 이 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조선왕조 초기의 깊고도 아픈 정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이번 글에서는 함흥차사의 역사적 뿌리,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와 그의 아들 이방원 사이의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신들의 의미를 역사적 사실과 상상을 바탕으로 풀어보고자 합니다.1. 조선의 시작과 불안한 권력1392년,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이는 바로 이성계입니다.당시 그는 고려 말 무장으로서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운 명장이었고, 백성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5. 6. 4.
세종이 며느리를 두 번이나 내친 이유 – 문종과의 이혼, 유교의 칼날 아래 무너진 두 여인” 조선의 왕비이자 세자빈이라는 자리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뒤편에는 엄격한 유교 규범과 왕실의 위엄이라는 무게가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조선이라는 나라가 막 건국되고,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던 과도기에는 궁궐에 들어온 여인들에게도 그 이상적 덕목이 엄격히 요구되었죠.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세종의 며느리들이자 문종의 아내였던 희빈 김씨와 순빈 봉씨입니다. 그녀들은 각각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지만, 끝내 폐위되고 쫓겨나는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두 번이나 며느리를 내쳐야 했던 세종, 그리고 그 곁에서 침묵했던 문종. 과연 이들의 선택은 절대적인 옳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유교라는 새로운 가치가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평가였던 걸까요?1.첫 번째 며느리, 희빈.. 2025. 6. 1.
지금도 낯선 이름, 나혜석 — 사랑했고, 고백했고, 버림받은 여인 “나는 죄인이다. 내 욕정을 말살할 능력이 없었다.”— 나혜석, 『이혼고백서』한 여인이 있습니다. 100년 전, 조선과 근대 사이의 문턱에서, 그녀는 사랑을 했고, 예술을 했고, 그리고 이혼을 했습니다.이름은 나혜석(羅蕙錫). 여성 인권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동시에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찜찜하게 하는, 복잡하고 낯선 여인입니다.그녀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요? 왜 그렇게 버림받아야만 했을까요?오늘은 그녀의 고백, 즉 『이혼고백서』를 중심으로 그녀가 택했던 삶과 그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1. 나혜석, 시대를 거스른 여인1910년대.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제 강점기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여성은 여전히 ‘집안의 명예를 지키는 존재’로만 여겨졌습니다.그런 시기에,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 여.. 2025. 5. 28.
“궁중여인들이 찾던 신성한 공간 ‘소격서’, 조광조의 개혁과 중종의 선택” 조선시대 왕실 제례기관 중 ‘소격서’는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도교와 무속 신앙이 혼재된 소격서는 단순한 제례 기관 그 이상으로, 특히 궁중 여성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었습니다.그런데 이 소격서는 중종 때 조광조의 개혁으로 폐지됩니다. 오늘은 소격서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으며 궁중 여성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 왜 조선 초기에 폐지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조광조가 폐지한 이후 상황과 그 여파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1. 소격서의 탄생과 역할 — 도교·무속의 중심 기관소격서의 역사적 기원소격서는 원래 고려 말기부터 형성된 국가 제례 기관으로, 조선 건국 후에도 유지되던 도교적 제례를 담당하는 기관입니다.‘소격(昭格)’이란 ‘신에게 영광을 밝힌다’는 뜻으로, 하늘과 땅, 신령에 제사를 지내는 역.. 2025. 5. 27.
"조선 궁궐에 도깨비가 나타났다 — 인선왕후 처소를 뒤흔든 미스터리 사건 “궁궐 깊숙한 곳, 왕의 어머니가 거처하는 대비전에 밤마다 괴이한 소리가 울린다.”이 말이 조선 후기 한양 도성의 궁궐을 뒤흔들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도깨비가 궁궐에 나타났다는 소문. 그것도 임금의 어머니가 머무는 가장 신성하고 조용해야 할 공간, 대비전(大妃殿)에서 말입니다.놀라운 점은 이것이 단순한 민간 전설이 아니라는 것.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국가의 공식 기록에도 버젓이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한 명의 여인이 있습니다. 숙종의 할머니, 인선왕후(仁宣王后)입니다.1.인선왕후는 누구인가? 숙종의 할머니, 조선 궁중의 정신적 기둥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왕비이자, 제18대 왕 현종의 어머니, 그리고 숙종의 할머니였던 인선왕후는 숙종이 즉위한 이후 ‘대비’로 불리며, 궁.. 2025. 5. 21.
“친일파 박제순을 향한 손자 박승유의 외침, ‘나는 그를 조상이라 부르지 않는다’ 을사오적중에 한사람인 박제순의 친일파 행보와 박제순를 가문의 수치라고 말한 그의 손자 박승유가 얼마나 많은 원망을 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출생과 성장: 박제순의 초기 생애박제순(朴齊純)은 1858년 10월 7일,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유서 깊은 양반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유교 경전을 익히고 학문에 힘썼습니다. 조선 후기의 혼란기였던 이 시기, 많은 양반 자제들이 과거 시험을 통해 중앙 정계에 진출하고자 하였고, 박제순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문관으로 관리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조정 내에서 외교와 관련된 사안에 관여하게 됩니다. 특히 국제 정세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능력과 언변은 고종의 눈에 들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2. 김윤식과의 관계: .. 2025. 5. 20.
퇴계이황은 지적 장애가 있는 아내를 존중해 주었다. 조선 중. 후기에서는 부부유별이라 하여  아내는 남자 하는 일에 감히 나서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부유별이라는 원래의 뜻이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와 남자가 서로 할 수 있는 것이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역할에 충실이 하며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전기에  부부유별이라는 뜻을 제대로 받아들인  퇴계이황의 아내 사랑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 퇴계이황의 두번째 아내주자의 성리학을 한층 더 발전시킨 퇴계이황은 누구보다 공자의 가르침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였던 인물입니다.   이황은 2번 결혼을 하였는데 첫째 부인 허 씨는 두 명에 아들을 낳았는데  둘째 아들을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하여 세상을 떠나고 맙이다.  이황은 첫번째 아내 3년상을  마친 뒤  두 번째 부인 권 씨를.. 2025.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