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일제시대56 ‘조선 금융계의 황제’였는가, ‘식민 권력의 브로커’였는가― 한상룡의 실체 신문은 그를 “조선 금융계의 황제”라 불렀지만, 학계의 평가는 훨씬 차갑습니다.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본 패전 직전까지 식민지 조선의 금융과 권력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인물, 한상룡 한상룡은 다 쓰러져가는 조국인 조선을 버리고 일본바라기를 한 인물의 행보를 따라 가보려고 합니다. 1. 출발선에 이미 놓여 있던 것들한상룡은 1880년 10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청주였습니다. 그는 관립 영어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1899년 일본의 사립 세이조학교에 편입했으나 1900년 중퇴합니다. 이 짧은 학업 경력은 훗날 그의 이력을 설명할 때 늘 간단히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그가 평생 활용한 가장 중요한 자산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일본어와 영어, 그리고 근대 관료제와 금융 용어에 대한 이해는 이후 그.. 2026. 1. 22. 한성은행, 한국 최초의 주식회사가 겪어야 했던 식민지의 길 안녕하세요.역사를 가르치고, 오래된 기록을 들춰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역사 교사입니다.오늘은 교과서 한 줄로는 절대 담아낼 수 없는 은행 하나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한국 최초의 주식회사’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와, 동시에 ‘식민지 금융의 하수인’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을 함께 짊어진 은행, 바로 한성은행(漢城銀行)입니다.이 은행의 130년 역사는 단순한 금융사가 아니라,이 땅의 근대화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타협을 했으며,결국 어디에서 무너졌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압축 파일과도 같습니다. 1.개화의 문턱에서 태어난 은행1897년의 종로 서린동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습니다.전차도 없고, 은행 간판도 낯설던 시절, 조선은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으로 근대 국가를 자처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 2026. 1. 22. [일제시대의 핫플] 한국인이 직접 경영한 종로의 화신백화점, 조선 자본의 빛과 그림자 일제 강점기, 일본 자본이 서울의 상권을 장악하던 시절— 그 속에서 ‘한국인이 직접 세우고 운영한 백화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종로 네거리의 상징이자, 근대 소비문화의 출발점이 된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입니다.1930년대 조선 사회에서 백화점은 단순한 상점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문명과 근대, 신여성과 도시인의 상징이자, ‘조선도 할 수 있다’는 자존심이 담긴 공간이었습니다. 화신백화점은 그 한복판에서 조선인의 자본과 근대적 욕망이 교차하던 무대였습니다.1.“화신”이라는 이름의 시작‘화신’이라는 이름은 원래 한 상인의 가게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890년대 말, 신태화라는 상인이 귀금속 상점 ‘신생상회’를 열었고, 1918년에 자신의 이름 ‘화(華)’와 신생상회의 ‘신(信)’을 따서 ‘화신상회’로 이.. 2025. 10. 24. [조선의 인플레이션] 경복궁 복원이 불러온 경제의 붕괴 조선 말기, 당시 실세 였던 흥선대원군은 왕권을 되살리기 위해 시작된 경복궁 복원을 추진 하였으나 결국 조선 경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흥선대원군이 발행한 당백전(當百錢)이라는 화폐가 있었고, 이 화폐는 조선의 경제 질서를 뒤흔든 주범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시기의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1. 흥선대원군과 경복궁 복원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열두 살의 고종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때 왕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섭정을 맡으며 실질적인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 시기의 조선은 세도정치로 국정이 문란했고, 안동 김씨 등 외척 세력이 오랫동안 정권을 쥐고 있었습니다.흥선대원군은 왕권의 약화를 조선 혼란의 근본 .. 2025. 10. 23. 친일파 1호 김인승 — 불평등 강화도 조약을 앞장 선 조선인 오늘은 ‘친일파’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 가장 먼저 조국을 배신한 인물 — ‘친일파 1호’ 김인승(金麟昇)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이완용보다 수십 년 앞서, 조선이 식민지가 되기도 전에 일본의 손을 들어준 사람.그의 이름은 김인승이었습니다. 1. 조국이 버린 인재함경북도 경흥 출신의 김인승은 16세에 관직에 오를 정도로 총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조선은 이미 부패로 썩어 있었습니다. 세도정치와 뇌물, 줄 세우기… 능력보다 돈과 혈연이 중요했던 시대.이 젊은 관리는 결국 상사와의 불화 끝에 조국을 떠나 러시아로 망명합니다.그의 첫 번째 배신은 일본이 아닌 조국을 향한 것이었습니다.그의 마음속에는 ‘이 썩은 나라에 내 재능은 낭비된다’는 분노가 자리했죠.이후 그는 러시아의 니콜리스크에.. 2025. 10. 18. 흥선대원군과 서원 철폐: 기득권을 무너뜨린 칼날 조선 후기는 무너져가는 시대였습니다. 500년 왕조의 기틀은 흔들렸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으며, 임금은 권위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결심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흥선대원군입니다. 고종의 아버지이자 섭정자였던 그는, 전통과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강력한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 개혁의 상징적 출발점이 바로 ‘서원 철폐’였습니다.하지만 서원은 단순한 사설 교육기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득권의 본산이었고, 조선 사회를 병들게 한 ‘지방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를 중심으로, 왜 그런 결단이 필요했으며,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1.세도 정치의 폐해, 그리고 무너져 가는 조선흥선대원군이 등장하기 전 수십 년간 조선은.. 2025. 7. 6. 사람을 향한 존중, 그 시작은 사랑에서 — 김구와 최준례의 결혼 이야기 1900년대 일제의 그림자로 초, 조선의 하늘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 시대에 김구는 감옥살이와 도망, 출가와 환속을 반복하며 세상의 경계 위를 걷는 사람이었습니다..그러나 그는 스스로 말합니다. 자신은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조국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모든 이들을 존중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건 그의 아내 최준례 여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1 김구 앞에 나타난 당찬 여인, 최준례그에게 다가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황해도 옹진 출신의 최준례 여사. 그녀는 부모가 이미 짝지어준 혼례를 거부하고 부모의 노여움도 무릅쓰고, 교회의 책벌도 감수하며 집을 나섭니다. 아무런 보장도 없는 30세 중반의 김구의 곁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녀가 김구를.. 2025. 6. 24. 정약용의 현감 시절, 실속 있게 백성을 돌보다.- 짧지만 깊었던 통치 조선 후기의 위대한 실학자 정약용은 우리가 흔히 학문과 저술 활동으로 기억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글만 쓰는 이론가가 아니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방 수령, 즉 현감으로 일하면서도 누구보다 철저하고, 또 실속 있게 백성의 삶을 돌봤던 현장 행정가였습니다. 정약용의 현감 시절은 그 자체로 실학의 현실 적용이자, 조선 후기 수령 행정의 이상적인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1.곡산현에서의 첫 실험 — 직접 걷고, 직접 듣다1794년, 정조의 명을 받아 정약용은 황해도 곡산현의 현감으로 부임합니다. 곡산은 외지고 험한 산지가 많은 지역으로, 당시 조선의 중앙 정치 무대에서 보면 다소 소외된 고을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약용은 이곳을 단순한 유배지처럼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곡산을 자신의 실학 사상을 현.. 2025. 6. 17. 신사임당, 율곡의 어머니가 아닌 그녀 자신의 예술가 이야기 “신사임당? 율곡 이이 어머니잖아.”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5만 원권의 얼굴이자, ‘현모양처’의 상징. 자식을 훌륭하게 키운 지혜로운 어머니.그녀의 이름은 언제나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에 덧칠되어 있습니다.하지만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은 단지 어머니였을까요?그녀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공간을 지키며 살았던 조선 중기의 ‘자기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었습니다.오늘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벗고, 그녀 자신으로 살아간 신사임당의 삶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1. 딸로 자라며, 세상을 배우다신사임당의 본명은 신인선(申仁宣)입니다. 그녀는 강릉에서 태어났고, 조부모와 외조부모의 손에서 성장했습니다. 특히 외할아버지 이사온은 학문을 중시하는 인물이었고, 여성에게도 교육이 가능하다는 관.. 2025. 6. 15.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