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역사24 동아일보 100년의 역사, 일장기 말소부터 백지광고까지 1920년 창간한 동아일보는 100년 넘게 한국 사회의 변화를 기록해 왔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검열과 폐간, 군사정권의 언론 탄압, 시민들이 채운 백지광고까지, 동아일보는 한국 근대현대사의 굴곡을 담아냈습니다. 동아일보의 발자취를 돌아보려 합니다.1. 일제강점기에 탄생한 신문, 민중에게 다가가다.3.1 운동 이후 일제는 이른바 "문화톤치"를 내세우며 우리말 민간 신문의 발행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신문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총독부는 기사 내용을 검열하는 과정에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지면은 압수하거나 발행을 중단시켰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1920년 4월 1일, 김성수 등을 중심으로 동아일보가 창간되었습니다.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를 내세웠지만. 창간 초기부터 정간과 압수.. 2026. 9. 22. “부처님이 노하셨다” — 연이은 참사가 만들어낸 김영삼대통령 청와대 불상 괴담 50대 이후의 국민들은 문득 기억하실겁니다. 사람들 속삭이면서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 불상을 치워서 나라에 자꾸 사고가 난다”는 애기들말입니다지금 돌아보면 황당한 이야기지만, 그 때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들었습니다. 그만큼 그시절에 상상하기 조차 싫은 대형 익명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기 때문입니다.기차가 뒤집히고, 배가 가라앉고, 멀쩡하다고 믿었던 다리가 무너졌습니다. 이 괴담을 이해하려면 불상보다 먼저, 반복되는 참사 속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두려움과 분노를 살펴봐야 합니다.1. 기차도, 비행기도, 배도 안심할 수 없었던 1993년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1993년 3월 28일, 부산 구포역 부근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전복됐습니다. 인근 지하공사의 발파작업으로 철길 아래 지.. 2026. 9. 16. 의료보험에서 국민건강보험까지 — 정권별로 달라진 50년의 변화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일부 직장인에게서 시작해 농민과 자영업자까지 확대됐고, 이후 여러 보험조합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발전했습니다.이 글에서는 박정희 정부 이후 각 정권에서 의료보험 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왜 그런 변화가 필요했는지, 그리고 종이 의료보험증과 수작업 관리에서 오늘날의 전산시스템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박정희 정부 — 의료보험의 출발점박정희 정부는 1963년 의료보험법을 만들었지만 당시에는 임의가입 방식이라 실제 가입자는 많지 않았습니다.본격적인 변화는 1977년이었습니다. 500인 이상 사업장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직장의료보험이 의무적으로 시행됐고, 1979년에는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까지 대상이 확대됐습니다.다만 당시 의료보험은 어디까지나 .. 2026. 9. 10. 한국 의료보험의 출발 - 박정희시대 모두의 반대를 뚫고 만든 제도 오늘날 우리는 병원에 가면 건강보험을 너무나 당연하게 이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보험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법이 제정된 뒤 실제 시행되기까지 14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정부 내부의 반대와 의료계의 반발, 재정 부담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합니다. 의료보험의 시작은 박정희 때 부터라는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볼려고 합니다.1. 의료보험 준비는 이승만 정부 때 시작됐다한국에서 의료보험 도입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이승만 정부 말기였습니다. 1959년 10월 보건사회부에 건강보험제도 도입을 연구하기 위한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하지만 당시에는 연구 수준에 머물렀고 실제 법률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본격적인 움직임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시작됩니다. 박정.. 2026. 9. 7. 전직 대통령 연금, 지금까지 몇 명이 받았을까? "팩트체크" 대통령이 퇴임하면 평생 받습니다. 현재 전직 대통령에게 매달 1,500만원 안팎으로 지급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전직 대통령들의 사건들은 끝이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서는 문재인만 연금을 받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는데 누가 연금을 받았는지 또 받지 못한 대통령들은 누가 있으면 왜 못받았는지 알아볼려고 합니다.1. 전직 대통령은 연금을 얼마나 받을까?전직 대통령 연금의 시작은 1969년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를 만들었고 이는 헌법 제85조에는 “전직 대통령의 신분과 예우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이 법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에게 지급되는 연금은 지급 당시 대통령 보수연액의 95%를 기준으로 합니다.일반 국민이 가입하는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이 재직기간 동안 .. 2026. 8. 25. 바다 위에 떠 있는 암자, 600년 역사를 품은 간월암 충청남도 서산 천수만에는 아주 특별한 절이 하나 있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면 섬이 되고, 썰물이 되면 다시 길이 열리는 곳. 바로 서산의 대표 명소인 간월암입니다.많은 사람들은 간월암을 서해 낙조가 아름다운 관광지 정도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 작은 암자 안에는 고려 말의 혼란, 조선 건국, 불교 탄압, 일제강점기와 광복까지 대한민국 역사의 굵직한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겉으로는 조용한 바닷가 암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백 년 동안 역사의 파도를 견뎌온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신비로운 섬, 간월암의 시작간월암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습니다. 과거에는 ‘피안도’라고 불렸고, 절 이름도 피안사였습니다. 밀물이 차오르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이 연꽃 같다고 하여 연화대라고도 불렸고, 풍수지.. 2026. 5. 23. 세운상가는 왜 흉물이라고 불리울까 세운상가는 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공간입니다.중학생이던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마이마이를 사러 갔던 곳이 바로 세운상가였습니다.유리 진열장 앞에서 괜히 마음이 부풀고,세상이 조금은 더 넓어 보이던 장소였습니다.지금 아이들이 애플 태블릿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을 느낀다면,그 시절 저에게 세운상가는 딱 그런 공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그래서인지 세운상가를 두고 ‘흉물’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이곳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다시 한 번 알고 싶어졌습니다.1. 세운상가의 땅 원래 계획된 공터였다세운상가가 자리한 곳은 원래부터 상업지로 계획된 땅이 아니었습니다.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이 일대는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해 비워두기로 한 공터였습니다.도시의 안전을 위해 일부러 비워두는 공간,즉 ‘아무것도 없어.. 2026. 1. 15. 한국 섬유산업의 선구자 이병철의 "제일모직 "양복 한 벌로 나라를 살리다 "값비싼 수입양복을 대신할 옷감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이병철 회장의 이 한 마디에서 시작된 제일모직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기업의 성공담을 넘어서, 전후 복구기 한국이 어떻게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입니다.1.1950년대 대한민국의 현실절망적인 경제 상황6·25 전쟁 직후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반열에 있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고, 전기와 도로, 철도 같은 사회기반시설은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일상복조차 배급표로 구입해야 했던 이 시절, 양복은 말 그대로 귀족이나 정부 고위층만이 입을 수 있는 초호화 사치품이었습니다.양복의 경제적 의미당시 양복 산업의 구조적 문제는 심각했습니다.고급 양복 원단은 100% 수입에 .. 2025. 7. 20. 조선시대 창건 이후 600년 동안 굳건히 지켜온 숭례문이 방화 사건으로 한순간 사라지다. 2008년 2월 10일 8시에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타올라 잿더미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서 믿기지 않는 사건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1.국보 1호 숭례문, 불타기까지의 610년서울 한복판, 남산 자락 아래 우뚝 서 있던 숭례문은 단순한 문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새 수도로 삼으며 도시의 기틀을 세웠고, 그 문지방이 될 정문으로 숭례문을 창건합니다. 1395년 공사를 시작하여 1398년 완공된 숭례문은 도성 남쪽의 중심 문이자, 유교 정신을 담은 국가의 상징이었습니다.‘숭례(崇禮)’란 이름에는 ‘예를 숭상한다’는 조선의 국가 철학이 담겨 있었고, 성문은 나라의 위엄과 품격을 드러내는 첫인상이자 출입의 관문이었습니다. 당시 숭례문은 두터운 .. 2025. 6. 24.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