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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역사18

한국 섬유산업의 선구자 이병철의 "제일모직 "양복 한 벌로 나라를 살리다 "값비싼 수입양복을 대신할 옷감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이병철 회장의 이 한 마디에서 시작된 제일모직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기업의 성공담을 넘어서, 전후 복구기 한국이 어떻게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입니다.1.1950년대 대한민국의 현실절망적인 경제 상황6·25 전쟁 직후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반열에 있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고, 전기와 도로, 철도 같은 사회기반시설은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일상복조차 배급표로 구입해야 했던 이 시절, 양복은 말 그대로 귀족이나 정부 고위층만이 입을 수 있는 초호화 사치품이었습니다.양복의 경제적 의미당시 양복 산업의 구조적 문제는 심각했습니다.고급 양복 원단은 100% 수입에 .. 2025. 7. 20.
조선시대 창건 이후 600년 동안 굳건히 지켜온 숭례문이 방화 사건으로 한순간 사라지다. 2008년 2월 10일 8시에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타올라 잿더미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서 믿기지 않는 사건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1.국보 1호 숭례문, 불타기까지의 610년서울 한복판, 남산 자락 아래 우뚝 서 있던 숭례문은 단순한 문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새 수도로 삼으며 도시의 기틀을 세웠고, 그 문지방이 될 정문으로 숭례문을 창건합니다. 1395년 공사를 시작하여 1398년 완공된 숭례문은 도성 남쪽의 중심 문이자, 유교 정신을 담은 국가의 상징이었습니다.‘숭례(崇禮)’란 이름에는 ‘예를 숭상한다’는 조선의 국가 철학이 담겨 있었고, 성문은 나라의 위엄과 품격을 드러내는 첫인상이자 출입의 관문이었습니다. 당시 숭례문은 두터운 .. 2025. 6. 24.
마우스 발명자 엥겔바트 이야기, 애플·MS가 이득 본 이유 우리가 매일 쓰는 마우스,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못 벌었다는 이야기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손이 가는 도구, 바로 '마우스'입니다. 클릭하고, 드래그하고, 창을 닫고, 스크롤하는 모든 동작은 마우스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너무 익숙해서 별생각 없이 쓰는 이 작은 장치가 사실은 컴퓨터 역사의 조용한 혁명가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오늘은 마우스의 발명과정과 그것이 세상에 등장했을 당시의 이야기, 그리고 그 발명을 통해 돈을 벌지 못한 사람과 돈을 번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때로는 아무리 위대한 발명이라도 시기가 맞지 않으면 그 혜택이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는 씁쓸한 교훈과 함께요.1. 마우스는 언제 만들어졌을까?마우스는 1960년대에 미국의 과학자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 2025. 6. 17.
푸른 기와가 돋보이는 청와대: 역사 속 숨겨진 이야기들 여러분, 혹시 **'청와대'**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대한민국 대통령이 살고 일하던 곳, 웅장하고 푸른 기와 지붕의 건물... 그런데 이 푸른 기와집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우리 민족의 아픔과 희망, 때로는 소름 돋는 이야기들까지 품고 있답니다. 오늘은 딱딱한 역사책 대신,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청와대의 흥미진진한 역사를 파헤쳐 보려 합니다. 자, 다 같이 시간 여행을 떠나볼까요?한눈에 보는 청와대 변천사청와대의 역사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긴 이야기를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먼저 표로 정리해 드립니다.시기이름/주요 기능주요 에피소드 및 특징 방문 예약하기고려 시대남경 이궁(別宮)풍수지리상 길지(吉地)로 손꼽혀 왕실의 별궁이 위치했습니다.조선 시대경복.. 2025. 6. 5.
"우리 엄마 생일은 음력이야" — 음력 달력, 아직도 살아있는 이유 요즘 대부분은 양력 달력으로 살지만, 이상하게도 음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명절은 물론이고, 부모님 생신이나 제사 날짜는 여전히 음력 기준으로 챙기는 경우가 많죠.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음력은 왜 생겼고, 지금도 왜 중요할까요?1. 음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음력은 달의 움직임, 즉 초승달부터 보름, 다시 그믐까지의 주기(약 29.5일)를 기준으로 만든 달력입니다. 이걸 12달 모으면 1년은 약 354일.문제는 양력(태양력) 기준 365일보다 약 11일 짧다는 것. 이대로 두면 명절이 매년 11일씩 앞당겨지겠죠?이걸 보완하려고 생긴 게 바로 윤달입니다. 2~3년에 한 번씩 한 달을 ‘덤’으로 넣는 방식인데요, 예를 들어 4월 다음에 '윤 4월'이 한 번 더 들어가는 식입니다. 이걸로 계절과 날짜.. 2025. 6. 5.
인삼, 동아시아를 사로잡은 신비의 뿌리 —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인삼 이야기 인삼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귀하게 여겨졌으며, 특히 ‘고려인삼’은 높은 품질로 유명합니다. 고대 중국 한나라 시절부터 인삼은 건강을 증진하는 약재로 기록되었지만, 실제로는 한국과 만주 지역에서 자생한 산삼이 진정한 명약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는 한반도의 기후와 토양이 인삼 재배에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인삼의 위상은 오랜 역사와 자연조건 덕분에 형성된 것입니다2. 중국이 우리 인삼을 좋아한 이유중국 땅이 워낙 넓고 다양해서 인삼도 충분히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중국은 큰 땅에 비해 인삼이 잘 자라는 기후와 토양 조건이 한정적이었고, 특히 고품질의 인삼을 재배하기는 어려웠거든요.반면, 우리나라 특히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은 서늘하고 습기가 적당한 기후, 그.. 2025. 6. 3.
역사를 따라 흘러온 커피, 그리고 한국의 겨울 아이스커피 하루를 여는 커피 한 잔. 현대인의 삶에서 너무도 익숙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 익숙한 음료 뒤에는 오랜 세월과 문명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특히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술이 금지된 이슬람 문화에서 정신을 깨우는 음료로 자리 잡으며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냈습니다.오늘은 커피가 어떻게 종교, 문명, 제국을 지나 한국인의 일상에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는 한겨울에도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민족이 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1.커피의 기원, 붉은 열매를 먹은 염소에서 시작되다커피의 기원은 9세기경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설에 따르면, 한 염소치기 칼디(Kaldi)가 자신의 염소들이 붉은 열매를 먹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에 그 열매를.. 2025. 5. 26.
가라오케로 시작한 노래방 역사 우리나라에 노래방이라는 것이 입성 한지도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의 노래방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기는 문화로 가족. 친구, 동료와 함께 때로는 혼자서도 스트레스 해소 하는 데는 으뜸인 장소입니다.이 노래방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리 잡았는지 한번 알아보려고 합니다. 1, 가라오케 반주기노래방에 시초가 된 노래 반주만 나오는 기계는 일본인 이노우에 다이스케라는 사람이 발명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원래 고베에서 무명 연주자였습니다. 주로 업소에서 손님이 노래에 반주하는 일을 하였습니다.그러다가 반주들을 미리 녹음을 해서 손님이 원하 곡을 틀어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미리 녹음을 해 두었습니다.이후 반주가 필요한 곳에 미리 녹음테이프를 제공하였습니다. 반응이 의외로 .. 2025. 4. 20.
조선 초기에는 사람들은 제사를 거부하였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제사라는 문화는 아주 오래된 전통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사실 제사라는 것이 조선 중기 에 와서야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사라는 것이 어떻게 정착했는지와  기제사와 차례에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 조선이전 사람들은 제사를 몰랐다삼국시대부터  고려말까지 사람들은 1000여년동안   불교 중심을 두고서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불교는 사람이 죽으며 환생을 한다고 생각하여  장례의식은 있으나 조상에 대한 제사의식은 없었습니다.조선이 건국한 뒤  태조 이성계는 정치적으로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사상을 내세우면서 제사를 언급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은 효와 충을 강요한 나라이므로  조상에게도 정성을 다하여한다고 생각하여 제사를 치르도록 명을 내렸지만  당시 조선 초의 사람들은 절에서 기도.. 2025. 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