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48 소현세자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 소현세자는 조선이 병자호란으로 큰 참폐로 인해 청나라의 볼모로 끌려간 왕세자입니다. 8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두 달여 만에 많은 의문을 남기고 갑자스럽게 죽고 말았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지 써볼까 합니다.1. 소현세자 청나라 볼모로 심양을 가다.병자호란으로 인조는 청나라에게 큰 참패를 해서 삼전도의 굴욕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들과 생이별을 해야만 했습니다. 청나라의 항복의 조건 중에 세자를 볼모로 데리고 간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소현세자의 아들은 아직 어려서 그를 대신해 소현세자 동생인 봉림대군도 같이 볼모가 되어 소현세자와 같이 가겠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소형세자와 그의 일행들은 청나라 심양까지 가는 .. 2024. 11. 2. 인조 병자호란에서 치욕를 당하다 인조는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러나 왕이 되어기에 조선의 왕으로 가장 큰 수치스러운 치욕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 글은 인조를 통해 조선의 비극인 병자호란을 알아볼까 합니다.1. 광해군을 쫒아내다.광해군은 자신의 친형과 동생인 영창대군을 유배하여 유배지에서 죽게 하고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고 서궁에 감금시키는 불효하였고 ,명나라에 충성를 다해야 하는 조선인데 광해군은 그리하지 않고 명나라와 후금의 중립외교을 하는것은 명나라의 불충이라는 것, 궁을 짓는다는 이유로 무리한 토목공사로 국가의 재정을 바닥을 냈고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등으로 인조는 36가지의 죄목의 명분을 만들어 광해군을 폐위 시키고 .. 2024. 10. 28. 광해군 세자시절은 영웅이었고 왕이 되어서는 폭군이었다. 세자시절 임진왜란 때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조선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한 광해군이 왜 왕이 되어서는 백성을 힘들게 하는 폭군이 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1. 광해군 임진왜란 때문에 세자로 책봉되다.광해군은 1575년에 아버지 선조와 후궁인 공비 김 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선조는 광해군을 애초에 세자를 삼을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선조의 마음에는 자신의 후계자는 후궁이 아닌 정비인 의인왕후 사이에서 나은 아들이 세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의인왕후 사이에는 후사가 없었습니다.그래서 선조는 누굴 세자로 정할 것인지 계속 미루고 있었습니다.그런 와중에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임진왜란으로 .. 2024. 10. 15. 조선의 왕 선조는 우리에게 비호감 왕이 된 이유 지금이 시대에 선조를 비호감의 왕으로 불리는 이유를 써보고자 합니다.1. 선조가 왕이 된 과정선조가 왜 이렇게 이기적이고 비호감 왕이 되었는지 조금은 그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그의 출생과 왕이 된 과정부터 알아보려고 합니다. 선조의 가장 큰 약점은 왕가의 사람이었으나 정통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조 그전의 왕인 명종의 후사가 아니었습니다. 선조의 아버지는 중종의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덕흥대원군입니다. 선조는 명종의 먼 친척인 왕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왕이 되었냐면 명종은 아쉽게도 그의 뒤를 이을 아들인 순희 세자는 13세 어린 나이에 죽고 맙니다. 그 후 명종에게 후사가 없어서 명종은 총명한 어린 선조를 차선의 선택으로 .. 2024. 10. 10. 문정왕후은 아들 명종보다 권력을 더 좋아했다 조선 11대 중종의 계비로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는 어린 명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통해 조선의 막강한 권력을 잡았던 여인입니다. 그녀의 생애와 그 당시의 정치적 사건을 알아보고자 합니다.1. 문정왕후 중전이 되다.문정왕후는 1501년에 태어나 1565년에 생을 마감합니다.비록 양반으로서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으나 정경왕후 가문에 윤 씨 집안이었습니다. 당시 중종의 두 번째 부인 정경왕후가 아들(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사망합니다. 보통 중전이 사망하면 왕의 후궁에서 중전을 뽑는데 아직 아기인 인종의 안위가 걱정된 외삼촌 윤임은 어린 인종을 보살펴줄 왕비로 자신의 가문의 처녀인 문정왕후를 중전으로 밀었습니다. 17세 나이로 중전에 자리에 오른 문정왕후는 자신보다 나이 .. 2024. 4. 17. 훈구파와 사림파는 그리고 조선의 왕 조선전기를 역사 공부를 하게 되면 훈구파 사림파 단어들이 계속 나옵니다. 훈구파와 사림파에 대해 설명들이 잠깐 나오기는 하는데 좀 더 심취 있게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조선의 왕들은 이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도 알아보겠습니다.1. 공신 훈구파 훈구파를 쉽게 생각하려면 조선 초기 공신 세력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세조가 계유정난으로 조카 단종의 욍의자리를 찬탈하는 발판을 만들었는데 이때 세조를 도왔던 한명회 정인지 권람 등의 대신들을 공신으로 책봉됩니다. 그 후 사육신사건과 이시애난에서 공을 세운 신숙주, 유자광과 함께 공을 세운 대신들도 공신이 됩니다. 이들은 공신이므로 나라에서 많은 땅과 재물 노비등을 하사 받았으므로 상당한 부와 정치세력을 갖고 있었던 훈구파.. 2024. 2. 6. 중종이 조광조를 버리기 위해 일으킨 기묘사화 조광조는 훗날 이황, 이이, 조식등 우리 잘 아는 조선학자들의 존경과 정신적인 멘토가 되는 인물입니다.그런 그가 중종을 만나 중종의 총애를 받고 중종에게 버려져 죽음을 당합니다. 이 글에서는 중종, 조광조 그리고 기묘사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중종반정중종을 알기 위해서는 중종반정에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중종반정은 1506년에 훈구세력인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중심으로 당시 폭군이었던 10대 왕 연산군을 폐하고 그 자리에 진성대군(중종)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입니다. 중종반정은 하룻밤에 일어난 사건으로 진성대군(중종 )의 장인인 신수근과 임사홍 장녹수 등이 반정세력들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진성대군(중종)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2024. 1. 28. 간신들은 연산군의 폭정을 더 증폭 시켰다. 조선시대의 폭군의 대명사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등을 일으켜 궁의 피바람을 일으킨 왕입니다 그의 뒤에는 폭정의 불을 지핀 간신들도 있었습니다.연산군의 만행과 간신들에 대해서 알아 보고자 합니다. 1 연산군연산군은 1476년에 태어나서 1506년에 사망하였습니다.연산군은 9대 왕 성종과 폐비 윤씨 사이의 태어난 맏아들로 연산군은 왕이 되기 전까지 폐비 윤 씨의 존재를 모르는 체 성장하게 됩니다.연산군이 19세 나이에 왕으로 즉위했고 왕으로 오른 초기 4년 동안에는 아버지 성종처럼 평안하게 나라를 이끌었다고 합니다.그러나 4동안 연산군은 사립파 관료들과의 마찰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명분과 도의를 중요시하는 관료들은 연산.. 2024. 1. 19. 사림파 김종직 등용으로 성종의 정치세력을 만들다. 성종 7년간 수렴청정이 끝나고 20세 나이에 친정을 시작했는데 대신들의 세력이 만만치 않자성종은 사립파 김종직을 등용하면서 자신의 정치를 펼쳐나갔으며 성종의 업적을 말해 보자 합니다. 1.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성종이 왕이 되다.성종은 1457년에 태어나서 1494년에 사망하고 조선의 9대 왕으로 재위기간 1469~1494년 까지재 위했습니다.성종의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의경세자가 20세 나이로 요절하는 바람에 사가에서 지냈으나삼촌인 8대 왕 예종이 즉위한 지 1년 2개월 만에 사망하였습니다.예종 사망 즉시 성종이 왕이 되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 13세였습니다.원래 성종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서열 3위였는데 그가 예종 아들과 형을 제치고.. 2024. 1. 15. 이전 1 2 3 4 5 6 다음